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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Oct 21. 2024

그녀의 목소리

한숨으로 한번 고르고 난 뒤인데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묻어있었다. 


입학식 이후,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유한 한국 엄마들은 곧장 단톡방을 만들었고, 빠르게 첫 만남 약속을 잡았다. 엄마들 사이에서 늘 중심부에서 적당히 떨어져 빙빙 돌며 공전하는 행성 같았던 나에게 엄마들 커뮤니티가 생기다니! 


이곳에서 만난 아들들 친구 엄마들(그리고 아빠들)은 다들 -정말이지 다들!- 친절했다. 하지만 그들의 친절은 딱 이방인에 대한 친절에 머물렀다. 따지자면 그들보다는 내 쪽의 책임이 크다. 말을 걸면 친절하게 답해주고, 만나면 다정하게 인사해 주고,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었다. 하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기 힘들었고, 그것은 언어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꾸만 뒷걸음치는 나 때문이었다. 몇 마디 나누다가도 말이 막히면 흠칫 뒤로 물러섰다. 독일인들은 차갑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 다가가지 않는다. 상대방이 마음이나 상황 따위 내비칠 겨를도 없이 삼바춤을 추며 다가온다는 브라질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브라질 분위기는 브라질 사람과 결혼하여 상파울루에서 10년 간 살다 온 지인이 전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일인의 지나친 예의 바름이 오히려 편안했다. 적당히 떨어져 있고 싶었고, 그게 나를(비루한 자존심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브라질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런 분위기였다면 이민생활 적응이 좀 더 빨랐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다. 약점을 약점으로 느낄 겨를도 없이 얼싸안고 어우러지는 그런 뜨거운 경험을 나도 해볼 수 있었을까?


하여튼 이제 좀 친하게 지내볼 수 있는 엄마들이 생겼나 싶었다. 같은 또래 아들들(구성원은 아들 셋, 아들 둘, 아들 둘의 엄마들에, 다들 첫 아이를 상급학교에 보내 본 것) 언어의 장벽이 없고,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공감 같은 것들이 아무래도 강력한 접착력을 가지지 않았겠나. 아마도 이 모임은 끈끈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동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각자 생활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야기의 소재는 끝이 없(을 것 같았..) 었고, 카페 안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메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첫 만남 후 우리의 리더 격이었던 T의 엄마- 독일 최장기 거주자, 마을 커뮤니티 정보통, 연장자, 독일어 유능자 등등의 이유로 -는 다시 연락을 해서 나머지 두 가족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독일에 오래 살아왔지만, 그녀도 한국인 엄마 커뮤니티는 처음 가져봐서 그랬던 것인지 적극적이었다. 


Gymnasium은 처음이라.. 또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안심이었다. Grundschule 때는 몰라서 놓친 것들이 정말 많았다. 구글 번역기 써가며 부모 역할 감당하기는 겨우 끝에서 허덕거리며 따라가기에 바빴다. 전력질주를 하는 것 같은데도 언제나 저 끄트머리에 간당간당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한국어로! 카톡으로! 물어볼 수 있다. 이미 우리 톡 방에는 이런저런 정보와 논의들이 오갔다. T의 엄마 역시 아들을 Gymnasium에 보내 본 것은 처음인 데다가 당시 코로나 상황이 이런저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둔 터에 우리는 서로 확인할 것이 많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독일인 엄마들 역시 그랬던 것 같다. Elternabend(독일의 학교는 학기 초에 부모들을 불러 학교, 과목별 학과 내용과 시험, 행사, 선생님 소개 등등 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후 만들어진 같은 반 Whatsapp(메신저앱) 그룹에도 자꾸만 문의가 올라왔고, 누군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답을 주었다. 막 이사해 들어왔을 때 정리되지 않은 집처럼 여러 모로 어수선하고 정신없지만 또 설레는 학기 초였다. 


수많은 메시지가 오고 가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라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때는 아무런 예감도 없이 전화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한숨으로 한번 고르고 난 뒤인데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묻어있었다. 


"자기야, 오늘 자기 아들이랑 우리 아들 싸운 거 알아?"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민트가 T를 때려서, 자기랑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민트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다. 

전화기 너머의 떨림은 이제 내 심장으로 옮겨왔다. 

이것이 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봉수 첫 신호였다. 

불은 활활 타올랐고, 연기는 하늘 끝에 닿을 듯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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