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확진자 발생 공지
코로나 검사를 대하는 자세
'사내 확진자 발생 안내드립니다....'
요즘 이 문자가 제일 무섭다. 공지가 뜨자마자 수천명이 동시에 확인한다. 조마조마하며 읽어내려가다가 확진자 근무지가 우리 건물, 우리 층이 아니면 휴 하고 안도한다. 어느 팀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주진 않지만, 혹시라도 동선이 겹쳤나 불안한 직원들은 어떻게든 누구인지 알아내기 때문에 금방 소문이 난다. 증상이 있었는데도 출근을 했다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욕을 하고, 오만군데 돌아다닌 이력이 공개되면 다들 분개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고생하는 사람을 욕해서 무엇하랴. 요즘은 증상도 없다는데. 추운 날씨로 연일 기침 콧물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천지다. 내가 지금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어떻게 바로 알겠는가. 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사내 지침상 밀접접촉자는 2주간 격리해야 하고, 같은 층에 근무하는 주변 이들은 음성 판정 후 출근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또 우리는 얼른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간다.
작년 말,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한 다섯 번은 코를 쑤시러 간 것 같다. 일 하다 말고 갑자기 통보받아 2시간씩 기다려 눈물 찍 나게 쑤시고 나오면 그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 이 검사를, 단지 같은 층에 있었다고 이렇게 매 번 가야하는건지, 이럴거면 진짜 전원 재택근무를 하는 게 회사로서도 이득이겠다 싶었다. 공사가 다망한 연말에 코로나 검사까지 보태 정신사납게 보내고는,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토요일 오후, 갑자기 섬뜩하게 울린 문자를 확인하니 사내 확진자 발생 문자다. 우리 층, 바로 옆 팀이다. 다행히 밀접접촉자는 아니라지만, 회사도, 육아도, 개인사까지 모두 겹쳐 동시에 날아오는 수십 개의 공을 쳐내느라 버거운 이 와중에, 코로나 검사라니. 싫어도 별수 있나. 꼼짝없이 일요일 아침부터 검사를 받으러 가게 생겼다.
갑자기 7년 전쯤이 생각난다. 큰 아이 낳고 복직했을 때,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하루 24시간을 숨가쁘게 살아가던 시절. 3개월에 한번씩 애가 아프거나 내가 아프고, 접촉사고가 나고, 남편과 크게 싸웠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어 움켜쥐고 있다가도,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었다. 내려놓는 수 밖에. 그러면 신기하게도 모든 게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외부의 환경이 간신히 내 인생의 농도를 맞춰주었던 시절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접촉사고가 나거나, 골병이 들어 링거맞고 누워있는 것에 비하면, 잠깐 코 쑤시고 오는 것 쯤이야.
코로나가 무서운 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거다. 아무리 일정이 많고 '지금은 안돼!'라고 외친들, 언제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바로 옆 자리 팀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이 요구되는 건 '멈춤'이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검사소에 가고, 집에 머물러야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동일한 요구다. 언제 어떻게 갑자기 멈추어야 할 지 모르는 이 시대에, 일을 마구마구 벌리는 건 적절하지 않은 듯 하다. 많이 벌릴 수록 수습이 안 된다. 지금처럼 수십가지 일을 쳐내던 중 갑자기 자가격리라도 하게 되면 누가 대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다. 한 번에 하나씩,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 두어야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 100m 달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멈추면 넘어지듯이.
요즘 뭐가 너무 많다 싶었다. 여기에 한 술 보태 코로나 검사까지!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너무 많으니까 stop 하라는 신호다. 검사 받고 집에 와서 차분히 하던 일을 정리하라는 뜻이다. 아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검사 받으러 가서 대기하는 그 짧은 시간 만이라도 심호흡을 하며 나를 돌아보면 좋겠다. 코를 쑤시는 건 너무 싫지만, 잠깐 찬바람 쐬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사내 확진자 발생 안내드립니다.' 이 문자는 이런 뜻이다.
'잠깐 멈추세요.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