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의 Feb 27. 2022

너만 아니면 되는거야

진짜 위로

아이가 낮에 속상했던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다 가져가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계속 욕심쟁이라고 놀려서 속상해 울었다고 했다.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스친다. 

'그 녀석 참.'

'앞으로 걔랑 안 놀면 좋겠다.'

'이제 곧 학교 갈 아이가 아직도 이렇게 잘 울어서 어째.'

'앞으로 학교 가면 이런 일이 더 많을텐데, 괜찮을까?'

...

복잡한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먼저 나서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리라 마음먹은 아빠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괜찮아. 친구가 뭐라고 하든 너만 아니면 되는거야."

...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으앙"

한번 더 울리고 말았다. 

우는 아이와 당황한 아빠를 바라보며 다급히 수습했다.

"우리 딸 많이 속상했겠네. 그 친구 ooo 참 못됐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계속 놀렸다고? 엄마가 내일 가서 혼내줄게. 내일 어린이집 가면 선생님한테 얘기해서 잠깐 나오라고 해야겠다. 우리 딸을 이렇게 속상하게 하다니,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다!"

머쓱해진 아빠도 거든다. 

"그래, 내일 물구나무 서서 한 손으로 브이(v)하고 기다리라고 해. 아빠도 가서 혼내줄테니까."

...응?

"아빠! 어떻게 물구나무 서서 브이를 해요."

하며 아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장난감이 어쩌구, 만화에서 어쩌구.. 

다음 날 아이는 진짜 엄마가 친구를 혼낼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자기는 이제 괜찮다고, 또 그러면 그 때 혼내달라고 했다. 기특한 녀석. 

그래, 속상했다고 말하면, 속상했구나. 하면 그 뿐이다. 진짜 달려가서 상대 아이를 혼내지 않더라도 약간은 과하게 우리 아이 편을 들어줄 필요도 있다. 같이 있는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 만큼은. 모르긴 몰라도 이미 선생님한테 싸우지 말라고 한바탕 훈계도 들었을테고, 혹시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면 스스로도 알 것이다. 누가 잘못한건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해결책을 고민하기 전에 빛의 속도로 먼저 반응해야하는 건 '아이의 마음'이다.

너만 아니면 돼, 속상해하지 마, 아무리 말해봤자, 이미 눈물이 날 만큼 속상했다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존감은 높여주려고 애쓴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때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그 안전감은 역시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 우린 네 편이라는 전폭적인 지지로부터 시작된다. 

어른들도 그렇다. '나 속상했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또는 배우자에게, '너만 아니면 되지 뭐.'라고 이성적으로 대꾸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기든 아니든 이미 나는 속이 상했다는데, '너만 아니면 된다'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될까. 오히려 그 말은 '그건 속상할 필요 없는 일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라며 '괜찮음'을 강요한다. 위로는 커녕 폭력에 가깝다.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때때로 상처받는다. 그 때 필요한 건 '너의 높은 자존감으로 알아서 이겨내'라는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낼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줄 진심어린 공감과 위로다. 하물며 아직 자아가 여물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아직 엄마 아빠도 서툴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자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가끔은 사무치는 책임감에 버겁지만, 그것조차 고마운 일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작가의 이전글 계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