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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Jul 19. 2021

6. 영어교육을 통해배운 것들

최종 합격통보와 동시에 영어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생활 11년 나에게 꽤 좋은 기회가 많았지만 그래도 꼽자면 영어 교육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보통 합숙훈련으로 밤 낮 없이 진행이 되었다던 교육은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비대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쁜 업무로 못 챙겼던 나의 생활도 돌아보고,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아이들과 못 보낸 시간도 보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저희 선생님은 좋은 분이긴 했지만 매우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수업은 8시 정각에 시작했고, 1분도 지각을 허용하지 않으셨고,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면 바로 지적을 하여 수업에 계속 집중을 하고 있어야 했으며 숙제가 엄청 많았습니다. 수업은 8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에 끝이 났지만, 끝이 나고도 숙제가 많아 늦은 밤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같이 하시는 분들께서 워낙 잘해오셔서 저만 건성으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제외한 9시간을 쉬지 않고 영어로 떠드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원대했던 꿈과는 달리 단 하루 운동도 독서도 아이들과 질적인 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고, 그것보다 "저"라는 사람에 대해 객관적으로 느끼고 알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조직에만 몸담았던 저는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사람들에 둘러 쌓여 나의 상태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익숙함에서 빠져나와 한 달간 다른 환경에 있던 사람들과 다른 주제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본인의 모습이 보이신다며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그 조언이 저에게는 큰 인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첫째, 자신감을 가지세요. 

솔직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운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도 많이 위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제가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잘 적응을 했기 때문에 조직에 인정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도 합니다. 

저는 참 많이 혼이 났습니다. 아마 2000년 초반에는 다들 많이 혼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렸고, 여자이기에 아무래도 눈에 잘 띄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쉽게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사람 아니야.'라고 넘겼으면 제 인생이 어떻게 흘렀을지 모르겠지만, 제 성격상 그런 얘기를 한번 들으면 며칠이고 불편했고 제 행동에 대해서 곱씹으며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해야 혼나지 않을지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렇게 불편함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으며 주눅들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라도 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11년이 지나니 눈치를 보는 것이 몸에 익어 버렸습니다. 

'자신감' 은 스스로 자에 믿을 신으로 스스로 믿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자신감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자신감을 굳이 내세우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말하면 또 혼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11년이 지났고 이제는 제 말에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습니다. 


둘째, 내가 중심이 되세요.

첫째랑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느낀 인사이트입니다. 스피킹 수업을 할 때 저는 항상 마지막 순서에 대답을 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쉬는 시간 저를 따로 불러 얘기를 했습니다. 

"왜 먼저 얘기를 안 해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중심이 되어야지요." 

저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그 사람의 성격과 다르게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 사람들의 환심을 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습니다. 나서는 역할은 저희 팀장님으로 충분했기에 저는 뒤에서 서포트하면서 다른 팀 사람들과 조율하는 역할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조금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11년이 지났고, 저도 더 이상 서포트만 하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이제 '나'도 빛이 나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끌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온 것입니다. 


셋째, 지금 당신이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에요.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좋습니다. 10년을 해 온 결과 잘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아직 배울 것도 많고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있던 환경에 대해서 의심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저희 조직이 다른 조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단점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목소리를 내야 나도 그리고 조직도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저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가 와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으나, 누구라도 이런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 영어 선생님의 본업은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번아웃이 된 상황에 프리랜서로 영어교육을 맡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몇 군데의 기업의 변호사로 일을 했었고, 정말 바쁘게도 살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당시 저희 수업을 해 주실 때는 영어 수업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제가 출국하기 전 연락을 드렸을 때는 상황이 바꿔서 영어교육은 이제 그만두고 풀타임 변호사가 되셨다고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냥 살고 있을 때는 사실 많은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완전 다른 상황이 되어야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일부로라도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찾아서 떠나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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