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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분담의 재정립, 중년에 이르러 성공했습니다

이해와 배려, 식상해 보이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by 금머릿 Mar 16. 2025

우리 부부는 76년생, 80년생 중년 부부다. 20대에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며 30대를 지나왔다. 남편은 직장에서 나는 가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서로가 감당했을 나름의 수고를 인정해 주며, 적절한 가사 분담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 돌아보면, 세 아이가 어린 시절에 남편은 슈퍼맨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아이들을 씻기는 것부터 청소, 설거지는 물론 아이들과 놀아주고, 숙제 봐주는 것과 책을 읽어주며 잠을 재우는 것까지 많은 것을 함께 해 주었다. 낮 동안 세 아이를 케어하느라 고군분투했을 아내를 위해 가진 재능과 체력을 아낌없이 소진해 주는 고마운 남편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가리켜 ‘애처가’라고 불렀고, ‘자상한’이라는 형용사를 아낌없이 붙여주었다.      


   그가 늦게 퇴근하던 어느 날, 나 홀로 방으로 들어가 세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날의 집안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새벽에 불편한 마음으로 거실로 나왔다가 나는 감동으로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아무렇게나 걷어 놓았던 빨랫감이 가지런히 개어진 채 한 곳에 놓여 있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장난감들은 모두 제자리에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소리 없이 해치워 준 남편은 거실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피곤을 무릅쓰고 아내를 위해 수고한 이에게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가 단지 의무감으로 그 일을 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참 다양하겠지만,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 이 사람이 나를 참 아껴주는구나.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나의 고됨을 이해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구나.’라는 거였다.      


   그랬던 남편이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세 아이가 많이 자라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돌봄의 강도가 낮아질수록 남편의 가사 참여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마음에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강도 높은 육아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가사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은 강도 높은 집안일에 나를 내팽개쳐 둔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 자연히 그리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 시기가 꼭 그때여야 한다는 것에 쉽사리 동의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로서는 당장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남편은 ‘이제는 퇴근 후 좀 쉬고 싶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나만 일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둘의 다툼이 잦아졌다. 남편의 고됨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으로는 ‘더 이상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 나를 향한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아껴주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강해서 좀처럼 이해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이혼이라는 단어까지 끄집어내면서 둘의 관계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았던 20년의 세월을 극복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참 녹록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극히 드문 나에게 생활비를 버는 일은 참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문득, 남편의 노고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폭탄이 연이어 터지듯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야, 우리는 차분히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내로 인해 서운한 마음이 큰 거였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남편이 서운한 거였다. 남편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나는 행여나 나의 역할을 하찮게 여기는 그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거였다.      

   

   그렇게 속에 든 마음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꺼내고 보니, 우리가 헤어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필요한 것은 다툼과 이별이 아닌, 역할 분담에 대한 재정립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름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배려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가정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함으로 해내기 위해 날마다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소설을 쓰고,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아이들 케어를 한다고 해도,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비교적 덜 힘든 것이니, 가사 일을 내가 주도적으로 맡아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가정을 돌보는 일이 결코 하찮은 게 아니라는 인식 변화와 함께, 내가 맡은 일의 가치를 높이고 나 자신을 높이는 마음의 작업도 함께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아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주말이나 휴가 때 또는 남편이 좀 일찍 퇴근하고 온 날에 남편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문을 닫고 홀로 방에 들어가는 남편을 비난하거나 그에게 화내지 않는다. 그도 그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시범 경기 언제 시작하지?”

   “요즘 뭐 볼 영화 없어? 드라마는?”

   “재미있는 웹툰 뭐 있어?”     

   

   각자의 시간을 인정해 주되, 함께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힘껏 함께한다.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같은 팀을 응원하면서 함께 야구 경기를 시청한다. 흥미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있으면 같이 보기도 하고, 재미있게 본 영화나 웹툰을 서로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휴식하는 시간을 인정하며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잘 감당하기로 하되, 누군가 힘들어하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지난 1월 31일, 설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이 아내의 우울증에 영향을 끼친다’는 어느 한 언론의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아내의 가사 노동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37분인데 비해, 남편은 21분에 그친다고 한다. 그리고 연구에 의하면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내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진다’고 한다. 그 보도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슬프게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남녀를 갈라 치기 위한 보도냐? 여자 입장만 생각하냐? 맞벌이면 이해하지만, 외벌이에 그 정도면 남자가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냐? 남자들의 우울은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반응이 상당했다. 보도의 취지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실현되도록 돕는 ‘사회적 제도의 필요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어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고자 하는 듯한 반응에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가치관의 차이는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갈등이 싫다고 해서 나의 가치관을 무조건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 결코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20년 결혼생활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그럼에도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건강히 세우기 위해서는 그 자세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중년에 이르러 ‘가사 분담 재정립’에 성공한 우리 부부가 현재는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모든 가정에 대입할 수 있는 절대 가치는 아닐 것이다. 각 가정의 상황이 다르니, 각자에게 맞는 역할 분담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함께 가정을 세우기로 약속했던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나, 연구 결과와 같은 누군가의 의견이 다툼과 미움의 원인이 아닌, 이해와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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