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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허블 Dec 06. 2019

애는 없지만, 육아휴직 중입니다.

올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했거나 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일을 별로 쉬어본 적이 없다. 여름휴가나 연차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인 데다,

프로그램을 옮길 때도 길어야 한 달, 그나마도 이런저런 기획과 미팅으로 온전히 쉬어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렇게 20년. 어느덧 정신을 차리니 내 인생엔 내가 없었다. 취미도, 재미도, 의미도.

무엇보다 미래가 없었다.


작가는 천년만년 물을 길어야 하는데, 함께 일하던 피디들은 점차 부장, 국장이 되어갔다.

함께 일하는 피디들의 나이는 어려졌지만, 불합리함은 개선되지 않았다.    

늘 새로운 기획안을 찾는 피디들은 막상 기획료는 아까워했고, 그야말로 피와 살을 갈아 넣은 파일럿은 참 쉽게도 엎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런 고민을 나눌 친구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먹고 죽을 시간도 없는 와중에도 차곡차곡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부분이 육아 휴직 중이었다.    

육아휴직 중인 그녀들 역시 살벌한 치열함을 뚫고 살고 있었으나, 부러웠다.

최소한 이 아수라장에서 한 발을 빼고, 나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억지 기회라도 생겼다는 것이 샘이 났다.

 

나도 쉴 수 있다면.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절벽이라면, 그래 한번 쉬어보자.

그래서 결정했다. 남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육아휴직을 자발적으로 한번 해보기로.

    

육아휴직의 기간은 1년.

생활비를 가져다 줄 남편이 없으므로 그 일 년을 버티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일단 가지고 있는 모든 적금을 깼다. 간이 작은 나는 큰돈은 못 모은다. 대신 자잘한 이름이 붙은 소소한 적금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여행” “자동차” “TV 교체” 등등 용도에 따라 이름을 붙여놓은 적금들을 둘러보니 아껴살면 일 년은 살 수 있을 듯했다.


두 번째론 동의가 필요했다. 다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지만, 타향에서 일만 하던 늙은 딸이 덜컥 백수가 된다고 하면 제일 불안해할 사람은 엄마이므로, 엄마의 양해를 구했다. 엄마는 양해가 아니라 통보라고 펄쩍 뛰었으나, 결국 내 고집에 졌다. 어쩌겠나... 내 인생인걸.     


준비가 되자 프로그램들을 정리했다. 오기인지 고집인지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모든 녹화와 원고를 털었다. 그리고 백수가 됐다.


그렇게 아이 없는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돌볼 아이 대신 나를 제일 잘 돌보는 육아휴직.    


육아휴직을 하고 제일 먼저 TV를 끊었다.  

매일 틀어놓던 뉴스, 그 지겨운 시시비비를 안 들으니 머릿속이 양치한 듯 개운했다.    

늘 챙기던 동시간대의 프로그램,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 니들이 아무리 해봐라, 내가 보나.

아무도 상관없었겠지만, 홀로 복수를 하듯 히히낙락 했다.

대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봤다. 아무것도 분석하지 않고, 그 어떤 판단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보는

영상물은 그저 재밌기만 했다.     


꽃이 필 때는 선유도를, 단풍이 질 때는 안산을 갔다. 막상 가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아, 남들은 이렇게 살았었구나 싶어 약이 바짝 오르는 게 하루라도 젊은 날 더 다녀야겠단 의지가 솟구쳤다.  세끼를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되도록 같은 시간에 자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스터디를 하던 이들과 작업실을 얻었다.     

일어나 아침을 먹으면, 작업실에 나와 kbs 별관을 째려보며 글을 썼다.

어떤 날은 한 줄을 쓰기도 하고, 운이 좋은 날엔 서너 장을 쓰기도 했다.


이렇다 할 성과는 아무것도 없지만, 최소한 모든 것을 놓고 긴 시간 동안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는 후회가 없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시간을 내서 글을 더 열심히 써볼걸’ 하는 후회를 내내 했을 테니까.     


그렇게 2019년이 지나가고 있다.

육아휴직이 원래 다 그런 것인지 이러다 영영 다시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은 필수옵션처럼 붙어 다니고,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유령처럼 주변을 맴돈다.

그러나. 그래도. 올해의 육아휴직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휘청휘청 넘어지려고 할 때는 넘어질 때까지 걷기보다는 잠깐 주저앉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비록 엉덩이는 차갑고, 사람들의 눈빛은 매서워도. 주저앉은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니까.    


일 년 동안 아이 대신 나는, 나를 키웠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많은 돌봄이 필요하지만, 언젠간 혼자 숟가락질도 하고, 뛰어다니는 날도 오겠지. 아니  것이다. 지금은 자라나는 아이를 믿듯, 그렇게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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