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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허블 Nov 23. 2019

능력없는 늙은 딸

나의 중년과 아빠의 노년이 만났다.

결국 아빠의 무릎이 고장 났다. 지난 가을 사과를 따며 아빠가 다리를 절뚝이는 것을 보기는 했다.  

물리치료를 받는다니 그만한가 보다 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사달이 난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걱정과 한숨은 아리랑 고개도 돌아 넘어갈 듯 길고 험했다.   

 

“내가 병원 알아보고 예약할께. 걱정 하지 마”    


곧장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명색이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몇 개나 한 작가인데도 이럴 때 딱 떠오르는 병원도, 안면있는 선생님에게 부탁할 주변머리도 없다.  자존심이라기보다 면구스러움과 민망함이 간절함을 이겼다. 그저 하던데로 꾸역꾸역 자료조사를 거쳐 병원을 예약하고, 올라오실 버스표도 애매했다.    


병원에 오니 의사 선생님은 대뜸 수술이 답이란다. 내가 봐도 아빠의 MRI 사진 속엔 연골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 집 아래 넓은 밭의 복숭아와 채소들은 거름을 먹고 큰 줄 알았더니, 아빠의 연골을 먹고 자란 것이었나 보다. 일사천리로 수술이 결정됐다.     


예약과 진료까지의 과정도 지난했으나, 수술은 또 다른 문제였다. 피검사에, 엑스레이에, MRI에, 온갖 이름 붙은 수술 전 검사들. 입원도 전에 진이 빠졌다. 

게다가 검사실은 왜 이리 구석구석에 있으며, 순서는 또 왜 이리 오락가락인지. 

관절 전문 병원이라 노인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분들이 과연 이곳을 다 찾아다닐 수는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든 환자들 곁에는 다 나 같은 자식들이 하나씩 끼어있다.

마치 세일 상품에 붙은 옵션처럼, 유치원의 인솔 선생님처럼 모두 팔짱을 끼거나 옆을 지키고 앉아있다.

'대체 자식 없는 사람들은 병원에 어떻게 다니라는 건가? 자식 없는 나는, 미래에 병원도 못 오겠구나.'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하며  엄마 아빠를 양쪽에 끼고 앉아있자니 새삼 부모님의 노년이 실감 났다.      


천년만년 젊을 것 같았던 아빠의 망가진 다리가 새삼 무겁고, 목소리만큼 성질도 카랑카랑하던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는 게 눈으로도 보여 마음이 짓눌렸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돈을 벌다말다하는 능력없는 내 현실이, 파도처럼 마음을 쳐댔다.

고등교육 근처에도 못 가본 나의 부모가 순전히 당신들의 팔과 다리로 있는 힘껏 키워낸 딸인 내가, 

프리랜서로 살며 지금 이 순간 척척 병원비도 계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꾸 고개가 꺾였다.

   

내가 조금 더 젊었다면 기다리라고, 성공해서 꼭 호강시켜 주겠다고 흰소리라도 뱉어볼텐데. 

나이만큼 아는것도, 무서운 것도 많아진 나는, 가벼운 위로도 쉽게 건네지 못한다.


내가 방탄소년단이라도 되면 모를까, 자식이 아무리 성공을 해도 부모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알고는 있다. 그러나 중년에 만난 부모의 노년은 자꾸 나를 기죽게 하고, 막막하게 한다. 멀지 않은 날에 더한 일이 닥치면, 그때는 또 어째야 하나 하는 바보 같은 걱정에 마음이 요동치기도 한다.     

  

아빠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 마음은 점점 더 흔들리며 밀려간다.

능력없는, 늙어가는 딸이라는 자각이 추위보다 매섭다.

나이가 든다는 일은 참, 11월의 날씨만큼이나 서늘하고, 쓸쓸하고, 무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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