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허블 Mar 24. 2020

남자말고 친구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술을 한잔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일상은 피곤하지만 힘겹지는 않았다. 오늘은 상처를 주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은 아무렇지도 않은

많은 날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고 자란 동네가 아닌 이곳엔 불러낼 친구가 없다.


그저 직장과 가까워, 집값이 적당해서 살고 있는 동네는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와 친한 건 마트와 세탁소와 한강뿐이다. 무생물들과만 안면을 트고 사는 게 겁나 싸늘하다.

집에서 입던 데로 입고, 슬리퍼를 직직 끌고 가서 만날 친구가 없다는 건 가끔씩 삶을 숨 막히게 한다.  


<섹스 엔더 시티>에서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가장 부러웠던 건 그들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나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사가 아니라 죽일 듯이 싸우고 엉기면서도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찐친들은 멀리 있다. 고향에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고, 남편과 자식 때문에 제주도로 대구로,

멀리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떼로 몰려다니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던,

방송 바닥에서 함께 전투를 치르던 친구들 역시

육아에 치어 나와의 시간은커녕  자신만의 시간도 없이 산다.


나이가 들며 필요한 많은 것들, 돈, 일, 가족...

그러나 그 많은 것들 중 가장 간절한 것은 친구가 아닌가 한다.

누군가의 딸이나 선배나 상사나 동료가 아닌 그냥 내가 나여도 되는 사람.


편안한 차림으로 서로의 집에서 혹은 동네 허름한 맥주집이나 한강변에 앉아서 실없는 농담과 헛소리를

나누다가 후렴구처럼 붙는 ‘젠장!’ 한마디로 서로의 하루를 짐작하며 웃고 마는.

실없는 농담이나 헛소리, 나도 끔찍한 나의 바닥을 가끔 내보여도 내일이면 잊어줄 친구.  


아, 참... 친구가 고픈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씁쓸하고 찐한 고들빼기 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