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 엄마의 요리법(feat. 수고로움)
집에 오니 엄마가 와 있었다.
“어떻게 연락도 없이 왔어?”
“어제저녁에 자려고 누웠는데, 마당에 고들빼기가 눈에 아른거리더라고. 집에 있으면 내가 저걸 다 캐서 또 김치를 담그겠구나 싶어서 아침 먹자마자 그냥 왔어”
엄마의 갑작스러운 서울행은 그러니까 일종의 도피다. 보나 마나 텃밭이라고 하기엔 넓고, 전답이라고
하기엔 낯부끄러운 자투리땅에 아빠가 대책 없이 심은 고추와 땅콩, 고구마를 캐느라 또 허리가 굽도록 땅에 엎드려 있었던 거겠지. 땅은 한 평도 남는 꼴은 못 보면서 수요에 대한 계산은 정확치 않은 아빠와, 사방이 아까운 거 천지인 엄마의 콜라보가 또 허리 펼 날 없는 나날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가을이 끝날 때쯤이면 엄마는 털실을 반자루 정도 사 와서 뜨개질을 했다. 털실은 가을 내내
엄마의 밤잠을 쪼개 먹고 조끼와 니트, 스웨터, 양말이 되어 형제자매들에게 나눠졌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날 엄마가 떠준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예쁘다며 내 스웨터를 벗겨서 돌려봤지만, 나는 친구들의 코트가 부러웠다. 조다쉬나 뱅뱅, 그런 브랜드가 새겨진 바지나 코트가.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당시 엄마의 뜨개질이 지금의 고들빼기 김치같은 것이었다.
앉을 새 없이 온 몸을 움직여 다른 이를 걷어 먹이고, 입히는데 모든 시간을 쓰는 삶.
누군가는 쉽게 말하는 희생.
“먹으면 나물이고, 안 먹으면 잡초지. 그깟 고들빼기김치 안 담그면 어때? 뭐 얼마나 먹겠다고”
“왜 안 담가? 담그면 너도 먹고, 니동생도 먹고, 이모네도 먹고. 그게 다 반찬인데”
“반찬이 없어서? 깻잎에 무장아찌에, 마늘종도 했다며. 그만 좀 해”
“어떻게 그만 해. 조금만 움직이면 몇 집이 먹는데...”
“그놈의 고들빼기, 가서 확 불을 싸질러버릴까 보다”
나의 어이없는 화풀이에 엄마가 웃는다.
엄마의 웃음을 보며 이 순간,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평생 가난과 가족에 쫓겨 억척으로 살아온 늙은 여자에게는 엄마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먹고 싶은 것을 물어봐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인생은 얼마나 캄캄할 것인가?
엄마가 그런 캄캄함을 도망쳐 내게로 왔다는 생각이 드니, 전염병처럼 서러움이 밀려온다. 서러움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기운 빠진 엄마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짐하듯 잘 돼서 호강시켜준다는 공수표를 십여년 째 변함없이 날리며.
이틀 만에 엄마는 다시 짐을 쌌다.
“벌써 가게?”
“뒷마당에 밤이 많이 떨어졌을 거야. 가서 밤도 줍고, 슬슬 김장 준비도 해야지”
엄마는 또다시 억척스러운 삶으로 돌아갔다. 아마 일주일쯤 후면 엄마를 도망치게 했던 고들빼기가 김치가 되어 택배로 도착하겠지. 뒷마당의 밤도, 과수원 길가의 대추도 곧 엄마의 커다란 냉장고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나의 가난은 추억이지만, 엄마의 수고로움은 일상이다.
고들빼기김치가 혀끝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씁쓸한 이유다.
◀엄마의 요리법 –고들빼기김치 ▶
재료 : 고들빼기 1kg, 실파 5줄기(50g), 밤 5개(50g), 고춧가루 10큰술(50g),
멸치액젓 1/2컵(100ml), 새우젓 2큰술(20g), 마늘(다진 마늘) 6큰술(60g),
생강(다진 생강) 1과 1/2큰술(15g), 소금(소금 약간))
1. 고들빼기는 뿌리와 잎 사이를 칼로 긁어 손질한다.
2. 손질한 고들빼기를 물에 담가 흔들어 여러 번 씻은 후 소금물에 담가 하루 정도 쓴맛을 제거한다.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3. 실파는 씻은 후 뿌리 부분을 썰어내고 밤은 껍질을 벗기고 채 썬다.
4. 액젓과 양념재료를 넣어 김치 양념을 만들듯이 골고루 섞는다.
5. 양념에 고들빼기, 실파, 밤을 넣어 골고루 버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