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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an 12. 2021

쿠바 여행 생활자

쿠바에서 살아가는 방법

이젠 여행이 아니라 생활, 쿠바에 와서 반가운 손님도 만나고 쿠바 살사도 배우기 시작하면서 냉장고에 먹을거리를 사놔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쿠바에서는 마트나 슈퍼마켓 같은 단어가 너무 생소하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거니와 그런 곳을 간다 해도 정말 필요한 물건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설탕을 사야 했다. 소금은 마트에서 우연히 샀는데 설탕은 안 파네? 도대체 설탕은 어디서 사야 한단 말인가?!!!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상점을 헤집고 다니다가 길가는 노부부에게 물었다. 아주 짧디 짧은 나의 스페인어는 설탕을 어디서 사냐고 정도는 물어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물어 물어 겨우 찾은 설탕 가게, 여긴 설탕만 파는 것은 아니고 기름인가 쌀도 파는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마트 가면 쌀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굳이 쿠바 현지인들이 배급받는 곳에서 쌀을 살 필요까지는 없어 설탕만 사 왔다. 뭐 이리 기쁜 것이냐? 고작 설탕 하나 샀는데...


나름 간지나는 쿠바의 보데가, 설탕 쌀 등을 판다
쿠바에서 비닐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설탕 가득!


길을 거닐다 대파를 발견하고 “파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나고 보니 대파가 아니긴 했지만 대파스러우면 뭐 대파로 먹어도 그만이겠지? 쿠바에서는 비슷하기만 해도 그냥 봐줄 수 있다. 딱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려우면 대용품을 찾아야 하는 나라 쿠바.



난 한국에서 살 때도 양배추 김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양배추 김치를 좋아하셔서 종종 집에서 양배추 김치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내 젓가락이 양배추 김치에 닿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쿠바에 오니 겨울과 봄까지 나온다는 배추를 구경하기 어려웠고 2018년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여행을 하면서 한인민박에서 본 레디쉬 김치가 떠올랐다. 간혹 리어카 야채 장사꾼들이 팔던 레디쉬를 득템!



그런 날은 레디쉬 김치 담그는 날이다. 쿠바 레디쉬는 억센 경향이 있는데 (쿠바는 모든 채소가 다 억센 느낌) 특히 줄기 부분이 손으로 잡으면 따가울 정도다. 그래도 김치로 만들면 먹을만하다. 열무김치 맛이 난다. 무 부분은 깍두기 맛이 나니 이보다 좋은 김치 재료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쿠바 레디쉬는 무가 많이 매워서 매운맛을 빼줘야 한다. 그래서 사이다나 환타에 담갔다가 김치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탄산음료를 구하기 쉬웠던 때라 괜찮았다.



처음 레디쉬 김치를 담글 때는 줄기 부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치 담그는 횟수가 늘 때마다 줄기는 점점 더 김치가 되었다. 양파도 무 크기만큼 썰어서 넣으니 아주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가 되었다. 방에 싱글 침대가 하나 있어 룸 셰어를 하며 두 명 정도의 여행자와 함께 방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밥을 같이 먹었던 동생 중 한 명이 내가 만든 레디쉬 김치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설렁탕집 깍두기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쿠바에 살며 점점 음식 솜씨만 늘어갔다. 7남매의 맏며느리 딸로 태어나 부엌 댁이 인생은 살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결국 어쩔 수 없나 보다.



계란을 얻은 날은 그야말로 파티다. 쿠바 하면 계란만 떠오를 정도로 계란 사는 것이 하나의 일이다. 외국인의 입장이니 웃돈을 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하는 계란, 한 판에 5쿡(5달러)이니 너무 비싼 편이지만 어쩔 수 있겠나? 4 쿡에 달라고 애걸복걸을 해봤지만 아주 단호했단 계란 파는 아저씨. 잘 먹고 잘 살아라!


사진 찍으라며 포즈 취하는 쿠바의 상인들


베다도에 있는 17 시장에 가면 어마어마한 채소들을 영접할 수 있는데 특히 레디쉬 구하기가 참 쉬운 시장이었다. 운이 좋으면 배추도 구할 수 있다. 2019년 3월 중순에는 배추를 못 구했는데 그래도 레디쉬가 있어서 다행! 사진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자기 사진도 찍으라며 포즈를 취해주는 쿠바노들. 뭐 이런 맛에 시장 다니는 거지! 이런 시장에 올 때도 비닐봉지는 필수다. 없어도 입구에서 비닐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지만 그분들이 안 계실 때도 있으니 항상 가방에 한 두 개의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것은 쿠바 여행 생활자의 필수 덕목!



우연히 라면을 발견하면 사두자. 언제 또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쿠바는 자꾸 나에게 쟁여놓는 습관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물이나 맥주 등 마트에 물건이 들어오면 줄이 길어지고 하루 만에 동이 나기도 한다. 다들 사쟁여둔다. 아직 쿠바에 온 지 몇 주 되지 않아 몰랐던 시절.


한국인 여행자들의 은혜로운 나눔


단기로 여행을 왔다가 떠나는 한국분들의 축복을 받을 때도 있다. 남은 한국 음식들을 다 주고 떠나는 천사 같은 분들.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이 인연이 연결되어 쭉 이어진 경우도 있다. 쿠바에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한테 뒤통수 맞기도 해서 이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지만 여행자로 만난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뭐든 장단이 있기 마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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