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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Sep 28. 2021

여행의 8할은 사람이다

내 생애 두 번째 아버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어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을 보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그 여행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곳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거기서 만난 사람이나 거기서 겪은 경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에게는 그랬다.


내가 내 생물학적인 아버지 외에 내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그 친구를 만난 것도 그러했다. 바야흐로 2012년 2월, 미얀마라는 나라에 여행을 가 본 사람보다 가지 못한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다. 어느 나라던지 가면 자동로밍이 되던 시절? 미얀마만 유독 자동로밍이 되지 않는단다. 미얀마에 가면 로밍도 안되고 인터넷도 자유롭지 않았다. 수도를 제외하고는 도시에서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아다녀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은 와이파이 가능한 곳이 서너 곳 있지만, 부산이나 대전에 가면 도시마다 한 곳 있을까 말까 할 정도?


그렇게 문명과 단절된 미얀마였고 당시에는 군사정권이 끝나고 이제 좀 열리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해서 갔던 미얀마의 만달레이라는 도시에서 우연히 어떤 중국 중년 여인을 숙소에서 만났고 그 여인을 통해 영국에서 온 젠틀한 여행자 로저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지 싶어서 같이 만달레이 우비인 다리에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우연찮게도 로저와 내가 쓰는 DSLR의 바디가 같았고 렌즈도 하나가 같았다. 우리는 서로 파고다 렌즈라고 광각렌즈를 그렇게 불렀다. 로저가 가진 망원렌즈를 우베인 다리에서 빌려 썼는데 꽤 괜찮은 사진이 나왔다. 그렇게 다음 날 우린 만달레이에서 바간까지 하루 종일 이동하는 슬로 보트를 같이 타고 바간까지 같이 이동했다.


미얀마 만달레이 우베인 다리에서 함께한 로저


바간에서는 숙소가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다음날 일출 투어를 하고 오는 길에 일몰 투어는 같이 하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를 그의 숙소 리셉션에 두고 나왔다. 일출 투어를 다녀와서 조식을 먹고 있던 시간에 로저가 내가 머무는 숙소로 찾아왔다. 그렇게 우린 일몰 투어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 긴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난 그가 좋았다. 외국인과 이렇게 긴 기간 시간을 나눠본 적도 없었고 무슨 대화를 해도 그와는 대화하기가 편했다. 그렇게 일몰 투어를 마치고 다음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도시에서는 그렇게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도시인 미얀마 낭쉐에서 만난 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태국 방콕에서 다시 만났다.


2012년 이후로 난 그와 매년 태국 방콕에서 만났다. 매년 난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기에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오는 로저와 시간을 맞춰서 만났다. 2016년까지 매년 만났고 그 후로는 2017년에 직장을 다니다가 내가 런던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서 로저의 집에 며칠 머물기도 했다. 참 신기한 인연이지. 낯선 땅에서 만나 매년 그렇게 만나다가 결국 내가 영국 런던까지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로저의 부인도 만나고 그의 집에 며칠 머물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로저의 부인과 런던 교외에 위치한 로저네 집에서


내가 십 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로저다. 물론 런던에 가서 내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아 이게 대화의 한계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 해도 로저는 로저다. 내가 부모님한테 말하지 못하는 아픔도 로저에게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항상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만 해준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할리우드의 멋진 아버지상이다. 절대 비난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라던가 그런 뉘앙스가 없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로저가 죽으면 당장이라도 런던에 갈 거야.’


수년을 알고 지냈지만, 나는 그에게 한 번도 그의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상대방이 스스로 말하지 않고서는 일부러 몇 살인지 뭐하던 사람인지 묻지 않는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저가 뭐하던 사람인지는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와서 추측한 것뿐, 물어본 적이 없다. 단, 그의 나이는 그가 내 아버지의 나이를 물으면서 묻게 되었다. 그는 내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그맘때쯤 로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썼던 것 같다.


로저와 태국 방콕 방와 근처에서


2016년 태국 방콕에서 다시 만나고 헤어지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와 전철역 앞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헤어지기 전에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근데 평소와는 다르게 그의 어깨가 떨렸다. 사람이 울 때 나는 떨림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오만가지 상상이 들었다. 정말 난 그가 죽을병에라도 걸렸나 싶었다.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 어디 아픈 거 아니야?

- 아픈 곳 없어.

- 근데 아까 왜 울었어???

- 몰라 그냥 그랬어

- 아픈 거 진짜 아니지?

- 아니야 ㅎㅎ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의 떨리던 어깨. 마치 본인이 아프고 늙어서 다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것 때문에 슬퍼지는 그 기분.


내가 로저를 아버지라고 처음 불렀을 때쯤,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내 진짜 아버지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말, 물론 내 진짜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게다.


“항상 너 같은 딸이 있었으면 했어.”


로저는 자식이 없었다. 그 말을 듣는데 내가 그의 딸이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정말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법한 자식에게 용기만 북돋아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항상 내 편이 되어주었다. 언제라도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하는 것은 꾸지람의 대상이 되는  유년기 시절을 돌아보자면,  커서 만난 그가 나에게 말해줬던  단어  단어 모든 것이 축복이었다.  진짜 배낭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해준 그가  인생에서 언젠가 사라진다 생각하면 극한의 슬픔이 앞선다. 아마 그때   길을 잃고  모든 여행의 추억을 곱씹기가 힘들어질  같다.  아버지가 나이 들듯, 그의 나이도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다. 뭐든 스스로 하는 로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던 말을  하거나 뭔가 기억의 흐릿함이 점점 또렷해져 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몸으로 느껴진다. 현실감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내가 오롯이 느끼는 돌이킬  없는 세월의 야속함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편이고 나를 항상 응원해주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항상 그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지만, 내 삶 속에서 힘들 때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은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변함이 없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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