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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30. 2024

닮아가는 취향

사랑으로 나의 취향은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네가 좋다는 걸 들으면 널 따라 좋아하게 돼
닮아가는 거완 다르지 널 자꾸 따라 하려 해




수지의 '취향'이란 노래엔 이런 가삿말이 나온다.  '네가 내 취향이 되었는데 너라는 이유 외에는 없는데'



난 사랑에 빠질 때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나 또한 좋아하게 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전에는 관심이 없던 것들도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면 유독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나 음악, 취미생활 같은 측면에서 그렇게 되곤 하는데  처음엔 '내가 줏대가 없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란 사람은 본디 누가 하라고 하면 청개구리가 되어 관심 있던 일도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이상한 오기 혹은 고집을 가지고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가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취향을 좋아한다고?


근데 그러더라.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취향마저 좋아하다 그게 결국 내 취향이 되어버리더라.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어른 중 하나인 김이나 작사가님은 BBC 인터뷰에서 '취향'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취향이라는 것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면 단순히 취미와 여가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의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취향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지키고 찾지 않으면 진열된 사람들, 진열해 놓는 것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됐어요.

온통 알고리즘 투성이인 이 무서운 세상이라 내 성향, 취향에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 말이 백 프로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난 취향이란 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로 지인들에게 줄곧 '넌 취향이 정확해.'라는 말을 들어오곤 했다. 일부러 취향을 만드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어릴 적부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것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무언가를 나 역시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시에 빠지기 시작할 때쯤 예술 쪽에 감각이 있는 남자 A를 알게 되었고 그 무렵 국현과 한가람 미술관을 유독 자주 가게 되었다. 어릴 시절 영향으로 전시관람을 취미로 갖게 된 이유도 있겠지만 한 50%는 A의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A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공 때문에 영화를 즐겨봐 오긴 했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분명하다 보니 다양한 영화를 찾아보진 않았었다. 그러나 A를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히치콕이나 누벨바그, 우디앨런 등의 영화들을 찾아보며 그동안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의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의 식견은 넓어지되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취향은 뚜렷해졌다.







내 이야기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남자는 (A가 아닌) 음악을 참 많이 알았다. 덕분에 알게 된 음악들은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워주었고 지금까지도 따로 이름이 저장되어 가끔 그 리스트만 듣곤 한다. '감각 있는 사람이니 음악 쪽 일을 했어도 참 잘했겠다' 싶었는데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CD며 테이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고 했다. 이 남자, 왠지 어릴 적부터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처음 들어보는 노래부터 오랜만에 듣는 발라드, 팝 등등,, 유독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다. 난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음악 때문에 그 남자의 공간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이후  카페에서 틀어주는 음악이나 sns에 올려주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나아가 내 취향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 sns를 통해 오랜만에 듣는 혹은 새롭게 알게 되는 노래들을 발견하는 시간을 난 참 좋아했다)



예쁜 카페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커피가 맛있다는 곳을 중심으로 카페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단 커피를 좋아하던 내가 그 남자 카페에서 맛있는 라테를 먹게 된 이후 라테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전엔 살이 찌지 않기 위한 대체수단으로 타협한 것이 라테였다) 아메리카노의 맛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동네 카페라고만 말하기엔 아쉬운 혹은 아까운 곳이라 말했던 적이 있다. 커피에 진심이라 불리곤 하는 그 남자는 원두부터 다양한 선택지를 주었다. 처음엔 '뭘 저렇게 정성스레 설명하며 추천해 줄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가 '이 커피에서 어떤 맛이 난다' 이야기해 주면 그 맛이 느껴지는지 열심히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훈련 아닌 훈련을 받게 된 나와 내 지인 D양은 그 이후로도 다른 카페에 갈 때면 그곳 커피 맛은 어떤지 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 남자가 내려준 가장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붕어빵을 좋아해 (brunch.co.kr) 이후 유명한 카페에선 꼭 원두를 선택해 아메리카노를 마셔보곤 한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로 인해 커피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란 사람은 여름엔 산미가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우유맛만 강한 라테가 아닌 적당한 커피의 맛과 우유가 조화롭게 느껴지는 끝맛이 고소한 라테의 맛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 D양에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똑같이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게 내 취향이 되어버려." 라고 말하자 처음엔 "언니가?" 하고 놀라더니  "그것도 원래 언니 관심사였을걸."하고 답했다. 아예 관심 없는 것들은 아니었을 거라고. 원래도 나의 취향일 수 있는 것들이 좋아하는 상대로 인해 더 관심을 갖게 되며 좋아진 걸 거라 말했다. 지금껏 좋아하게 된 사람도 나와 겹치는 취향이 있기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냐면서.


생각해 보니 맞는 이야기 같았다. 소개팅으로 만났던 어떤 사람은 무척 다정했고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나가고 싶어 했지만 딱히 취향이 없다고 말했던 그 사람과는 무슨 이야길 나눠도 깊게 대화가 되질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공감할 만한 관심사가 없어 대화를 나눌수록 너무 지루하고 피곤했다.


그렇게 D양에 말에 나는 깨달아 말했다.  



"그 남자로 인해 나는 내가 모르던 나의 취향을 새롭게 발견한 거네."

"언닌 덕분에 또 성장했네."  



그래, 나는 좋아하는 누군가로 인해 나의 취향을 발견하며 나를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단순히 나와 취향이 겹친다고 해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취향이 겹치는 사람 중에서도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누군가 (선망의 대상 같은) 여야만 한다. 그 사람의 멋짐을 닮고 싶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나 역시 따라 해 보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게 내 취향이 되어버린다고.



그렇게 하나, 둘 모인 취향들이 나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수지의 노랫말 가사처럼 너라는 이유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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