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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Aug 15. 2023

붕어빵을 좋아해

그 계절 붕어빵에 빠졌던 이유



"오늘은 붕어빵 아저씨 왔으려나?"

"언닌 붕어빵 참 좋아해."




일 땡땡이치고 뒷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 저 멀리 보이는 횡단보도 앞을 보며 말했다.

우리 동네는 붕세권이다.  요즘은 찾기도 힘들어 귀하다는 붕세권.


덕분에 작년 가을, 겨울. 난 꽤 많이 그리고 자주 붕어빵을 먹었다. 특히 역 출구 쪽 횡단보도 바로 앞, 목 좋은 자리에서 계란빵과 함께 판매하는 붕어빵을 자주 먹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붕어빵이 미니미 버전이 되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는 편이라 자주 사 먹었다. 제일 가깝기도 했고.






근데 문 여는 게 복불복이다. 우스갯소리로 '아저씨 취미로 일하셔서 그래.'라며 돈을 많이 버셔서 열고 싶을 때 여는 거라고 닫힌 점포를 볼 때마다 말했다.



원래부터 붕어빵을 자주 먹었던 건 아니다.

뭐랄까,, 코로나가 날 붕어빵이 땡기도록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붕어빵의 묘미는 추운 겨울날 방금 나온 뜨끈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먹으며 걷는 것인데 코로나 이후엔 집에 도착해서야 마스크를 내렸기 때문에 식은 붕어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무더운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길을 걷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 뭔지 코로나가  참 많이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 겨울.. 점차 마스크 해제가 시작되면서 다시 그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입천장 데일 수도 있는 뜨거운 슈크림 붕어빵 먹기.'

원래 단 걸 좋아하는 편이라 좋아하기도 했지만 작년에 유난히 뜨거운 붕어빵이 맛있었다.




며칠 전 산책을 하며 걷다 (요즘 저녁 식사 후 매일 가벼운 걷기 운동 중이다) 횡단보도 건너편 문 닫힌 노점을 보며 작년 일이 떠올랐다.  


유난히 누군가를 안 보러 가기 위해 애쓰던 어떤 날. 자존심에 자주 가지 말자 해놓곤 한편으론 얼굴이 보고 싶어 스스로와 내기를 했다.




'복불복 붕어빵 아저씨가 문을 열었으면 보러 가자고. 붕어빵 아저씨가 장사 중이면 그건 가라는 하늘의 뜻이다 생각하고 보러 가자고. 그래서 시원하지만 씁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달지만 뜨거운 붕어빵과 함께 먹자고.'


며칠째 문이 닫혀있었기에 반신반의하며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붕어빵 노점상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난 마치 운명처럼 그 사람을 보러 가라고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더 업된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에 손에 꼽히는 정말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평소엔 라떼 마신다. 어떤 원두인지 모르겠지만 무료로 기본 원두에서 다른 원두로 바꿔줬는데 산미 있는 게 진짜 붕어빵이랑 찰떡이었다)


그날과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니 내가 왜 작년에 그토록 붕어빵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도 불 켜진 붕어빵 노점을 보는 건 복불복이지만 자주 먹지 않는다. 왜인지 미리 만들어 놓으셔서 식은 붕어빵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언제 문을 여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가지 않게 된다. 그래도 그 거리를 지나칠 땐 습관처럼 '아저씨 문 여셨나?' 하고 확인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난 그날의 붕어빵을 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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