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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un 25. 2024

나는 아직도 네가 얄미운가 보다

얄미움 1



여전히 남아있는 얄미움에 대한 이야길 쓰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쓰지 않으려 했던 글이다.

'이런 일과 생각들을 굳이 글로 남겨서 뭐 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습게도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대부분 남겨서 뭐 해 싶은 글이었다.


최근 '사랑이 취향을 이긴다'는 글을 읽었다.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격하게 싫어하던 한 여자는 담배를 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주구장창 말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들이 오면 본인이 가졌던 신념과 원칙은 모두 무너지고야 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더 이상은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쓰려던 이야길 멈춰버리고 딴짓을 하다가 문득 브런치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내가 쓴 글들 중 하필  글을 읽었더라. 바로 '얄미움' 얄미움 (brunch.co.kr) 이였다. 많고 많은 글 중에 하필 고민 중이었던 얄미움이라니.



아무래도 이 글은 써야만 할 것 같다.


 


1.


"언제 나랑 밥 먹어요."


좋아하는 남자에게 밥 먹자 한 말은 처음이었다. '식사는 했는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말처럼

물으면서도 희한하게 좋아하는 남자에겐 한 번도 '우리 밥 먹자' 먼저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낯섦, 불편함을 제일 싫어하는 나는 생각만 해도 불편할 것 같은 자리는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편이라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식사를 먼저 만들지는 않았다. 체할게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냈던 용기였던 것 같다. 둘이 먹는 식사가 불편할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혹은 대화 나눌 수 있는 순간을 바랐던 것 같다.   


 '참 쉬운 일이었구나.' 싶었다.


결국 나와는 한 번도 함께 하지 않았던 그 남자와 우연히라도 마주쳤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이 있다.

밖에서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길 나눴더라면, 아마 더 사랑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다. 그렇게 바라던 순간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더니 시간이 지나 이제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들이 찾아오더라.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인 자리였지만 한 때 바랐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쉽게 일어났을 땐 좋은게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쉬운 일이었구나. 그때 나에게만 어려웠던 일이구나.' 

 

참, 허무했다.




1.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알 수가 없다.

한 해는 온통 한 남자 때문에 흔들리더니 갑자기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주변에서도 이상하다며 이제 누굴 만날 때가 된 것 같단다.

그러나 난 어이없게도 그 남자가 더 얄미웠다.     


매일 사소한 농담과 일상을 주고받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집까지 바래다주겠다 찾아오는 일도

가고 싶다는 곳에 데려다주겠다는 말도

내 거냐는 농담에 진짜 선물을 받는 일도

다른 사람들과는 쉽사리 주고받는 이 모든 일상들이 한 해를 온통 뒤흔들었던 그 남자와는 닿은 적이 없었다.


씁쓸했다.


다른 여자와 밥 먹고 술 먹는 걸 알고 전처럼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게 아니라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그래 이제 보내야 될 때가 된 것 같아.'라는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질투도, 습관 같았던 나의 관심도 마음도 완전히 놓아버려야 할 때라는 것을 비로소. 마음 깊이 깨달은 것이다.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을 다른 사람들과 갔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도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싶던 걸 넌 늘 다른 사람들과 하는구나.' 싶어 이상 남자의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1.


그날은 유난히 일이 꼬이는 날이었다.

해외로 첫 여행을 떠난 엄마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카톡하나로 작은 실랑이가 있었고 그 일로 인해 나의 하루 일정은 모두 꼬여 버리고 말았다.  외출 전부터 잔뜩 화가 나버리는 바람에 '오늘은 술을 마실 거야!' 라며 지인에게 호기로운 문자를 보냈다. (물론 나의 음주실력을 아는 상대는 비웃음을 보내왔다.)


급하게 서울에 도착을 하고, 전시를 보고, 사람을 만나고.. 남은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려던 마음가짐과는 달리

버스를 반대로 타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근처에서 예전 생일날에 맛있게 먹었던 떡볶이를 살 수 있어서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하며 하루를 잘 넘겨보려 했다.


그런데 일진이 사나운 날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카페에서 마무리 지은 후 나오는 길에 그날 그곳에서 처음 본 사람이 따라 나와 번호를 물어왔다. 그 남자 지인이었다.


"서로 아는 사이 아니에요?"

"형한텐 제가 말할게요."

"아니요. 아는 분이랑 엮이는 거 싫어서요"


번호를 묻는 질문에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대답을(그 남자와 아는 사이가 아니냐는) 하긴 했지만 지인이라면서 그 남자에 대해 눈살 찌푸려지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을 보며 '넌 진짜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얄밉다 한들 남이 함부로 말하는 건 듣기가 싫더라. 그래서 예의는 지키되 잘 거절했다 생각했다.  (모르니까 묻는 건데 '개인정보라서 안된다'라는 말은 최악이었다 놀림감이 되고 있다. 늘 그렇게 말하는데 정말 이상한 대답인가...;;)



다른 때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그냥 넘길 일이었는데 괜히 찝찝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이 상황을 모르길 바랐었다.

'하루 마무리 마저 별로구나.' 싶어 지인과 연락을 주고받다 결국 술을 마시러 갔다. 그리고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번호를 알려준 적 없는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그 사람에게 연락처를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남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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