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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Sep 19. 2024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알아야 한다.


"활동은 재밌는데 할 게 너무 많네요"



노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접 주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우리 단체는 유아부터 어린이,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활동 중이지만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이 단체의 설립 목표 중 하나였기에 올해는 대상을 확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확실히 성인들은 까다롭다. 살아가는데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예술을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원해야 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직설적이다.


요즘 학교에선 다양한 예술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지만 어른들에게 예술 교육이라고 하면 여전히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 뭔가 강사에게서 배우는 과정을 떠올린다. '통합예술교육'이라 하면 대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번에 이해하기도 어렵다.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집부터 쉽지 않았고 결국 60대까지 모집연령을 낮추게 되었다.


우리 프로그램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나의 과거 경험, 요즘 나의 생각 등등) 그걸 그림으로, 연기로, 글로 표현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최종적으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낭독극으로 발표하게 된다.


당근마켓에 올린 프로그램 홍보글을 보고 스스로 참여 신청을 하셨던 A님은 예술가이다. 우리보다 경력이 훨씬 오래된 현역 화가. 본인도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았지만 어려움이 있었고 요즘 트렌드는 어떻게 흘러가나 싶어 신청을 했다고 하셨다.  사실 솔직히 부담감이 있었다. 예술가를 대상으로 예술 교육이라니... 우리는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아니라곤 하지만 자기소개에 어느 정도 '너희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앞으로 쉽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1차시 활동이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 웃으며 말은 하셨지만 꽤나 뼈가 있는 피드백을 남겨 주셨다. '얼마 못 가 그만두지 않으실까?'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번 지각하지 않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2차시 만에 욱하고 화를 내셨는데 이유는 본명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런 예술 활동할 땐 가명으로 하지 않나요?"



예술 활동을 할 때에도 평소에도 본인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활동한다고 하셨다. 우리 활동은 2차시부터 본인이 지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하였으나 출석확인을 하며 강사가 본명을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은 본명이 싫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놀림을 많이 받은 이름이라 어른이 되어서도 본명으로 불리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고. 그날 활동을 끝내고 다른 강사들에게 실수로라도 A 님의 본명을 부르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같은 예술가이지만 조금은 까탈스러운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난히 활동을 하시다가도 갑자기 날카로울 때가 있으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자신은 불우했었다.'라는 말을 자주 꺼내곤 하셨는데 A님보다 10살 더 많은 다른 참여자들이 '그때는 모두 어렵긴 했지'라는 말이나 '아버지도 후회하셨을 거야'와 같은 말을 하면

"모르시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라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곤 하셨다.


'다른 분들이 A님 말씀에 공감해주려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라는 말로 상황을 겨우 전환시켰지만 왜 갑자기 송곳처럼 날카로워지시는 건지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예술가이기에 유난히 예민하신 것인지 아님 자기표현이 낯설고 어려운 성인 남자이기에 그런 것인지 우리는 그분을 이해해 보기 위해 나름 다양한 분석을 해보기도 하였다.


어느덧 여섯 번째 만남이 이어지던 어느 날 어른들께 그림책 한 권을 소개했다. 그리고 종이만으로 내 마음의 집을 함께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날 A님은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나의 마음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말하셨다. 그리고 다음 활동에서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살았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저와 아버지의 관계는 좋지 않았어요. 제가 요즘 그림책을 쓰면서 그 시절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직까지도  그 상처가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제가 아버지 역할을 해보고 누군가가 제 역할을 해보면서 아버지에게 못했던 이야기 혹은 나도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치유해 보는 장면을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낭독극을 준비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말해주셨다. 그리곤 본인이 쓰고 있다는 그림책을 가지고 와 나에게 맡기셨다. 글을 쓰는데 도움도 주었으면 한다며... 먼저 도움을 청하시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림책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던 어린 소년을 향한 학대과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들을 읽을수록 머릿속에서 장면이 그려지며 그동안 왜 그토록 자신의 이름을 싫어하고 자신의 힘든 시절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이해한다 절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알아야 한다.





나의 부모님 혹은 할머니 나이대에 참여자분들이 자신의 과거이야기와 함께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본인에 대해 말해주신다. 자신의 결핍, 아쉬움, 그리움 등등...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깨달은 게 많아 고맙다 하셨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살아온 경험들과 이야길 들으며 우리가 깨달은 것들이 쌓여간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경험치와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만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게 되었다.

늘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저 사람은 왜 그럴까?' 하는 고민과 이해를 해보려 노력해 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보는 모습은 상대의 일부분일 테니 쉽게 이해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된 다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한다. 행여 맞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맞는 것은 아닐 테니 사람의 인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 착각하지도 쉽게 판단하려 하지 말자. 그리 다짐하게 된다.


함께 하고 있는 어른들 덕분에 나 역시 지금의 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새로이 만날 사람들에 대해 나와 다른 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니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가길.. 어른들의 낭독극 대본을 쓰며 스스로 바라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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