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잠수를 좋아해

말 안 하면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by 한꽃차이

파란 수국 한 명과 노란 튤립 한 명, 나의 두 아들이다.

먼저 파란 수국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혹시 당신 주변에도, 수국 한 명쯤 있을지 모르니까.


'물 수'가 이름에 들어간 만큼 수국은 물을 좋아하기로 1등인 꽃이다. 화분에 키운다면 날마다 물을 줘야 하고, 잘라낸 줄기는 몇 시간만 물이 없으면 바로 시들어버린다. 꽃시장에서도 수국만큼은 워터픽에 꽂아서 판다. 그러다 보니 얼마 못 가는 까다로운 꽃이라고들 오해한다.


과연, 그럴까? 수국은 억울하다. 수국을 열흘 이상 곁에 두는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꽃잎에 분무기로 칙칙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자주, 그리고 듬뿍. 물방울이 송송 맺혀있으면 반짝거리고 더 싱싱해 보인다.


대부분의 꽃은 꽃잎에 물이 닿으면 더 빨리 시든다. 하지만 수국은 꽃잎으로도 물을 흡수하는 꽃이다. 그러니 시들시들해졌을 때의 응급요법까지 있다. 수국 전체를 물에 푹 담가두는 것이다. 과연 꽃을 잠수시켜도 되는 것인가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더 담가두면 너무 배가, 아니 머리가 불러진 수국이 고개를 못 들고 푹 숙여버릴 수도 있다.


평생 접해보지 못한 정보에 살짝 당황한 당신의 뇌에 하나만 더 슬쩍 밀어 넣자면, 줄기는 최대한 뾰족하게 잘라주는 게 좋다. 이왕이면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한 번씩 더 잘라준다면, 장담한다. 열흘 이상 함께 할 것을. 당신의 수국은 스와로브스키 달린 명품가방 못지않게 빛날 것을.


내게 수국은 자기표현 명확히 하는 꽃이다.


난 물이 제일 좋아요!
물 챙겨주세요. 자주, 많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꽃 중에는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후드득 꽃잎을 떨궈버리는 꽃이 꽤 많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새초롬해진 여자 친구처럼. 이런 류의 꽃들은 대개 뒷수습이 안 된다. 그저 이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가슴 쓰려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꽃들에 비해 수국은 미리 챙겨줄 수 있고, 그저 물이면 방긋 웃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마음 상했을 때 돌이켜주기도 하고 말이다. 꼭 우리 둘째 같다. 막내답게 밀당을 하다가도 하루에 수십 번씩 폭 안겨서 뽀뽀를 외친다. 여섯 살인데 어려운 것도 돈 드는 것도 아닌 뽀뽀 하나로 여태껏 세상 행복해하니 고맙지 아니한가.


원하는 컬러까지 명확한 이 아이는 돌 전부터 '파!'를 외치며 파란 옷만 입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복 속옷 양말 신발까지 전부 다. 첫째를 어쩌다 아들 낳은 집들이 그렇듯, 우리도 둘째는 반드시 딸을 낳겠다는 원대한 가족계획이 있었다. 여동생에게도 입히겠다며 빨강 노랑으로 첫째를 입혀온 우리 집에 파란 옷이란 없었기에 신기한 일이었다.


함께 꽃시장에 가면 가장 큰 파란 꽃을 고른 후 꽃 시들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고 난리인 이 아이. 물방울 같은 눈에 내 얼굴을 가득 담고 안아달라고 두 팔 벌릴 때면, 나는 파란 수국에 푹 파묻히는 듯 경이롭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둘째라 무조건 예쁘긴 했지만, 잠시도 떨어지지 않아 온 몸이 아팠다. 그러다 수국 다루는 법을 알게 되면서, 이 아이는 수국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명확한 사랑 요구가 고마워졌다.


솔직한 감정표현, 당당한 요구. 그게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사회다. 내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라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을 듯하다. 나 역시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만큼 눈치가 빠르지도 않다. 그렇다 보니 수국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


원하는 게 단순하고 명확한 사람, 그걸 표현하는 사람.

그것만 채워지면 뒤끝 없이 웃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당신의 인생길에는 수국 가득 핀 나지막한 돌담도 있는 셈이다.

참, 편안하게, 고맙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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