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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15. 2024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때, 히아신스

흙이 없어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겨울마다 바빠지게 하는 꽃이 있다. 꽃향기 농도로는 따라올 꽃이 없는 히아신스다. 수많은 꽃이 향을 뿜어내는 꽃 시장에서도 히아신스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잘린 상태로는 얼마 안 가지만 수경 재배하면 한 달 정도 볼 수 있다. 하양, 핑크, 자주, 쿨톤 보라, 웜톤 보라, 노랑…. 컬러도 다양해서 나의 인친들은 겨울마다 이번에는 어느 컬러를 곁에 둘까 즐겁게 고민한다. 대량 구매도 종종 있다.


그 겨울 2t 탑차로 보낸 히아신스에는 챙길 디테일이 유난히 많았다. 상자, 설명서, 컬러 등등 담당자와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르신들이 보기 편하시도록 큰 글씨로 쓴 설명서도 보냈다. 그래도 전화를 선호하는 대한민국 국민 성향을 고려해서 전화번호도 적었다. 살짝 번거로울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가 일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전화가 몇 통 왔다. 그런데 내용이 의외였다.

고맙습니다. 꽃향기가 참 좋네요.
우울했는데 기분이 좋아졌어요.  

내가 보낸 게 아니라 기관에서 보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하셨다. 행사와 수업이 겹쳐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는데 힘이 났다. 그날도 수업 준비로 얼마 못 자서 살짝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런 문자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충남 광역센터입니다. 저희가 저번에 수령한 히아신스를 자살 유족분들께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 받으신 분들이 꽃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이 많아서 감사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수량도 많았을 텐데 하나하나 꼼꼼하게 포장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시는 일마다 잘되시고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쿵. 좋은 곳에 쓰였겠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쓰였을 줄이야. 말보다 꽃이 위로가 되는 분들이었구나. 얼마 만에 진심 어린 미소를 띠셨을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 꽃향기가 살며시 토닥거려 재워 드렸을까.


잠시 기도해 본다. 겨울에도 꽃이 피듯 꽃을 마주할 때만이라도 희미한 미소가 스치기를. 삶을 뿌리째 흔드는 슬픔 가운데, 흙이 없어도 물에 뿌리를 내려 결국은 꽃망울로 끌어올리는 히아신스의 생명력이 전해지기를.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고 생각한 스토어가 이렇게 사연이 모여드는 소중한 곳이 되었다. 꽃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어하시는 엄마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육아 후 오랜만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어요. 그동안 감사했던 어머니와 시어머니께 꽃을 보내 드리고 싶어요. 다른 선물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꽃이 좋을 것 같아요.

얼마나 소중한 지출과 고심인지.

요즘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어서 보내고 싶어요.
정말 소중한 인연이에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힘이 되어 준 고마운 분이에요.

좋아하는 컬러와 꽃을 물어본다. 사연에 따라 화사하게 또는 고급스럽게도 달라진다. 사실 이렇게 하나하나 맞춰 주어서는 그다지 남지 않는다. 금전적으로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두둑이 챙길 게 많다. 꽃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기회, 만드는 동안의 기쁨, 사진과 콘텐츠, 스토리와 리뷰. 점점 가심비 좋은 상품을 만드는 노하우도 늘었다. 온라인에서 친해도 택배라는 물성이 왔다 갔다 한 사이가 되면 더 가까워지기에 SNS를 하는 즐거움도 커진다.


무엇보다 나의 꽃만이 전할 수 있는 마음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내 삶의 의미다. 그 어떤 선물도 꽃을 대신할 수 없는 사연이 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나를 믿어 줬다는 고마움도 함께 담는다. 누군가의 겨울을 따스하게, 누군가의 봄을 반짝이게 만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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