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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은 Dec 13. 2021

공항의 십자가

그날의 기억들

    


    “간다.”


    “가라.”




    작별인사는 언제나처럼 건조했다. J가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이 늘 그렇듯 우리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함축적인 작별인사를 끝으로, 나는 뒤를 돌아 버스를 타러 큰길로 향했다. 나는 J가 대리기사님 월급을 드리는데만 한 달에 얼마를 쓰려나 내심 궁금해졌다.


    큰길에서 한 블록쯤 떨어져 있을 뿐인데, 골목에 지나는 사람이라곤 없고 서울 치고는 사위가 지나치게 어두웠다. 하긴 이러니까 주차장도 아닌 길가에다 J가 차를 댈 수 있었을 테다. 주차비를 아껴 대리비를 내는 건가. 알뜰하네.


    언제나처럼 잡생각을 하던 중에 골목에 들어서는 대리기사님을 마주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처럼 패스트 서비스라는 업계가 있다면 대리운전이 일 번으로 들어가야 마땅할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술을 마시면 잡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대리 부르셨나요?"


    이건 회사에서 정해주는 멘트인 걸까. 그도 아니면 대리의 정석 같은 교재가 있는 걸까.


    "아, 아니요. 저쪽입니다 고객님."


    아 이게 아닌데. 얼굴이 붉어졌다. 술을 너무 마신 게 분명하다. 아니 사실 직업병이라기에는 참 멋대가리라고는 없구나 싶어 그랬다. 우리끼리는 이런 것들을 공항장애의 일종이라고 부른다.





    스물한 살, 군대에서 처음으로 휴가를 나갔다. 집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느낀 생경함에 나는 퍽 감격스러워했다. 가족들과 저녁으로는 뭘 먹었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고이 적어두곤 했던, 나가면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서 적당히 골랐던 것 같다.


    어쨌든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몇 번이나 관등성명을 대거나 잘못 들었습니다를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끔찍한 일은 이런 일들이다.


    여권과 탑승권 주시겠어요. 최종 목적지가 어디신가요. 어떤 비자로 가시나요. 짐은 몇 개 보내시나요. 짐 안에 보조배터리나 전자담배 또는 라이터가 있나요. 그리고 질리지도 않고 말끝마다 붙이는 고객님. 고객님. 고객님. 그놈의 고객님 소리.





    "메일 보셨나요?"


    전화가 왔다. 썩 달갑진 않았다. 오래간만에 휴일을 맞아 늦잠을 자던 중이었다. 휴일에 회사 전화를 받으면 돈이라도 줘야 옳지 않나 싶지만, 다른 많은 회사원들처럼 내게도 그 말을 꺼낼만한 용기는 없다. 얌전스레 입을 열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무슨 메일을 말하는 걸까.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했나. 생각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누구를 죽이기라도 한 것도 아닐 텐데. 뭐, 기껏해야 말이다.





    역시나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승객의 불만이 들어와서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는 메일이었다. 왕왕 있는 일이다.


    불만의 내용은 이러했다. 한 승객이 탑승권에 손을 베이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열흘 동안이나(그의 주장에 따르면) 샤워를 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한 손가락에 입고 말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다시 잡념에 빠졌다. 우리 회사에 무인 전형이라도 있었나. 나는 무예가 특출난 우리 직원이 그 승객을 탑승권으로 습격이라도 한 줄로만 알았다.


    끝까지 읽고 보니, 그 승객은 탑승권을 키오스크에서 셀프로 뽑았노라 적혀 있었다. 나는 그의 짐을 부쳐준 직원이기에 그 메일에 답장을 해야만 했다. 이런 같잖은 일에도 대응을 해야 하는 건가, 우리 회사는 참 마음이 넓다. 그 넓은 마음으로 내 월급이나 좀 올려주면 좋을 텐데.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간결하게 메일을 작성했다. 이런 메일의 끝에도 잊지 않고 붙이는 감사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아니 우리를. 아니, 그만 말하는 편이 좋겠다.




    가끔 공항을 방황하는 인상적인 사람이 있다. 붉은 조끼에 붉은 모자를 쓰고 일견 제 몸만 해 보이는 붉은 십자가를 높이 든 채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예찬하는 노인이다. 나는 이 사람이 서울역 광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 이와 동일인물인지 그도 아니면 우리나라에 붉은십자군이라도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공항으로 출근할 때마다 AC/DC의 highway to hell을 자주 듣는 입장에서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심경이 제법 복잡하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여기가 지옥이 맞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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