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보며 든 생각
차도의 폭이 좁은, 그러니까 1차선 도로에 가로놓여 있는 횡단보도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몇 개 있다. 그런데 마침 차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라면, 신호등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차가 하나도 다니지 않는 그 횡단보도의 신호를 꿋꿋이 지키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지 않았는데도 거리낌 없이 도로를 건넌다.
굳이 이 지점에서 현대인의 윤리의식이나 법질서 따위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실효성 없는 신호등을 설치한 공공기관의 나태함과 방만을 지적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의 품격,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한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무단횡단이 그런 종류의 자유에 대표적인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차가 전혀 오지도 않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신호를 무시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무단횡단을 한 사람은 비록 법적으로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도로교통법을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윤리적으로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설사 그 사람이 사회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차가 다닐 때 무단횡단을 해서 도로 교통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자동차 운전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보다는 덜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 법적 문제를 차치하고 나서라도, 한 인간의 품격은 이와 다른 문제이다.
차가 다니든 다니지 않든,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공공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반대로 말해 공공질서를 어기는 행위는 자신의 편의를 위한 편법이며,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비겁하다.
따라서 무단횡단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많이 양보해서 법적,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고 가정할지라도(물론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행동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고작 3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팔고, 품격을 낮춘다.
한 인간의 양심을 3분의 시간과 맞바꾼다는건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다.
시간은 금이라지만, 적어도 인간이라면 시간보다, 금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