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Sep 03. 2019

헬조선의 사노비가 되다

광화문 인턴 일기


인턴생활의 유일한 낙은 동기들이다. 배울 점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라 매일 부족한 나를 발견하는 재미와 나의 빈틈을 채울 궁리를 하는 게 즐겁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영양가 없는 대화였는데, 여기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가 이어져서 즐겁다.

마음이 가장 잘 맞는 동기도 생겼다. 학구열이나 공부하는 것들도 비슷하고, 삶의 지향점이나 목표도 비슷하다. 산책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서 종종 버블티 하나씩 들고 광화문 일대를 걷곤 한다.


오늘의 주제는 우리의 부당 계약에 대해서, 엄밀히 따지면 세금을 납부하면서 조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복잡한 계약과 그 아래 놓인 일개미 겸 노예인 우리의 신세였다. 함께 일하는 동기들 중 그분과 나만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통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4대 보험 이야기부터 종합소득세 환산이나 근로장려금, 중소기업 청년 대출이나 디딤돌 혹은 LH 대출, 세전 연봉과 세후 수령액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등등... 결론적으로 '문과 여성 초임 연봉으로 우리가 서울에서 버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것과, 천년만년 내 몸 하나 뉘이면 끝날 원룸에 살고 싶진 않은데 서울에서 살며 월급으로 월세, 각종 공과금, 교통비, 통신비 등 기본 고정 지출에 생활비까지 합산하면 우리가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우리는 언제쯤... 미래가 보일까.
전혀 비관론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했을 뿐이다.
우리가 가르쳤던 예의 없는 대치동 키즈들과 학부모 이야기를 하며 결국은 수저론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입안에 데굴데굴 굴러가던 타피오카가 괜히 좀 씁쓸한 것 같기도 하다.
한성 한가운데서 헬조선을 외치는 언론사의 사노비들(사간원의 관노비만이라도 됐음 좋으련만... 현실은 대사간네 문간방 사노비랄까..)이라 자조적으로 웃어 보이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메밀묵 팔 무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