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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ul 29. 2019

다리 위의 서울, 다리 아래의 서울

치열한 삶을 잠시 멈추어도 좋아요.


서울의 여름밤, 마포대교 아래는 서울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어준다.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맥주 한 모금에 치열한 경쟁을, 두 모금에 힘겨운 취업의 고통을, 세 모금에 거지 같은 상사를, 맥주 네 모금에 가난한 지갑을 털어 넣곤 하는 고단함의 망각처다.


마포대교 위는 언제나 분주하다.

주홍빛 노을을 뚫고 달리는 버스. 왠지 버스 바퀴 소리를 터덜터덜이라고 묘사해야 할 것 같다. 이른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주말 저녁에도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마포대교를 지나고 있을 저 버스.

다리 위의 삶은 시끄럽고, 분주하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력 넘친다. 그러나 인간은 때론 군중 속에서 가장 외롭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 버스가 불현듯 나의 일상과 닮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부디 어깨 위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리 아래로 내려오길 바란다. 천천히 걸어서, 조금은 멀리 돌아서 두 다리로 걸어 내려오길 바란다. 당신의 고단함에 술잔과 귀를 기울여줄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나도 언젠가 창피한 것도 잊은 채 다리 위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고, 맥주를 쥐어주며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낯선 이의 조용한 위로는 기댈 곳 하나 없던 이 바쁜 도시에 마음을 붙이게 된 계기였다.

그 날 이후로 마음먹은 게 하나 있다.

그 날의 나를 지나치지 않아 준 그 사람처럼 나도 낯선 이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겠다고.

그러니 부디 다리 아래로 내려와 달라. 건배할 맥주병 들고 다리 아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나의 다짐을 실현시켜줄 따뜻한 선의를 가지고 부디 천천히, 여유롭게 다리 아래로 내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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