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E. 힐먼《디지털 실크로드》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항상 보안시설을 체크한다. 스프링클러가 있는지, 경보 센서가 있는지, 소화전은 어디에 있는지, 코너마다 소화기가 있는지, CCTV는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등 다른 사람이 보면 예민하다고 싶을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쓴다. 어릴 적 안전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살았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예민함으로 변한 게 아닐까 싶다.
이렇듯, 나는 사생활을 매우 중요시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선뜻 사생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적당히, 내가 괜찮게 산다는 걸 드러내는 것까지만 사생활을 공개한다. 하지만 CCTV 없는 사생활은 별로일 것 같다. 만약 우리 집 근처에 CCTV가 없다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디지털 실크로드》를 읽으면서 보안시설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중국의 기술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으며, 어디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저자 조너선 E. 힐먼은 갈수록 중국에서 만든 통신 기술이 많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강국의 자리를 차지하던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중국의 디지털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더 무서운 점은 개인 정보를 중요시하던 미국과 달리, 중국은 당의 권력을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국민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한다.
"인터넷 접속이 자유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는 환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훨씬 어두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디지털 독재주의가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국내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통신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p.17"
항저우는 중국 IT기술이 전부 모인 도시다. 책에 등장한 항저우의 모습은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흡사하다. 하루 24시간, 365일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며 산다. 온종일 당을 찬양하는 방송을 보고, 당에 충성하는 일상이 당연하다. 항저우 거리에 있는 카메라는 햇빛의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조정되며, 알아서 렌즈 초점을 맞춘다. 항저우에 있는 일부 임대 주택은 집 안에서도 주민들을 감시하게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는 이것을 '지능형 커뮤니티 구축'이라 불렀다.
"중국공산당은 항상 시민들을 지켜봤지만, 이제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그들 삶의 깊숙한 곳까지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노골적인 목표는 모든 공공장소와 모든 얼굴을 완벽하게 감시하고 그 데이터를 다시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것이다. p.149"
중국은 CCTV 기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비디오 감시 시스템을 목표로 두고 있다. 중국 정부에게 두둑한 지원을 받은 화웨이, 하이크비전, 샤오미, 알리바바 등의 IT기업은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자국민을 감시할 방법을 연구 중이다. 또한 이 기술을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 도상국에 추출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넓힐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들은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미래로 향하는 지름길을 제공할 것이다. 독재자들은 중국에 새로운 운영체제 주문하면서 유지보수 계약도 맺을 것이다. (중략) 이것을 지켜본 많은 관찰자는 중국이 '독재를 수출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151"
2005년 중국은 "범죄와 싸우고 발생 가능한 재난을 막기 위한" 도시 감시 프로그램인 스카이넷을 발표했다. 10년 후 이 프로그램은 '매의 눈'이라는 이름으로 시골까지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매의 눈은 직접 사상경찰이 방문하지 않아도 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누구와 만났는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막대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당은 언제든지 주민들을 감시할 수 있다.
"'매의 눈'은 이런 감시를 전례 없는 규모로 가능케 하며,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시민들이 서로를 지켜볼 수도 있다. 주민들은 소파에 앉아 정부 뉴스를 보다가 자기 동네의 비디오 피드로 화면을 전환할 수 있다. 아니면 휴대폰 앱을 통해 영상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 버튼을 눌러 바로 당국에 신고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은 잔인할 정도로 영리하다. p.153"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비윤리적인 기술 활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진핑의 비전인 일대일로(49개국의 도로, 철도, 해로 등의 교통 인프라 직접 투자로 연결하여 국가 간 운송 시스템 마련)를 실현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 기술을 수출하고, 반역 세력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기술이 외국 도시로 확산되자,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중국이 만든 게 아니라 중국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정책 입안자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p.183"
"많은 나라가 중국산 장비를 수입하기 전까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중국의 보안 감시 회사들은 아주 뛰어난 기능을 판매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돈만 내면 누구에게나 팔 용의가 있다. p.184"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효율성이 아닌, 최대한의 통제 능력이다. 선진국보다 값싸게 통신 장비를 파는 대신, 그 나라의 통제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단순히 사람들의 얼굴을 구분하고, 범죄율을 낮추며 치안을 강화하는 것보다, 장비를 수출한 나라의 내부 정보를 들여다보고 중국의 속국으로 만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값이 싸고, 나쁘지 않은 기능을 갖춘 중국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파키스탄은 1억 달러를 들여서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화웨이와 '세이프 시티'시스템을 설치했다. (...) 나중에 기술자들은 카메라에 자기들이 접근할 수 없는 와이파이에 전송 카드가 장착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p.188"
《디지털 실크로드》를 읽으며 일대일로를 이루겠다는 중국의 야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았다. 내가 알던 중국은 싸구려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였다. 물론, 최근 홍미노트, 샤오미 제품처럼 가성비 좋고 성능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왔지만,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일 줄 몰랐다. 책 덕분에 중국 디지털 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생활에 도움 될 내용은 아니었지만, 또 하나의 교양을 쌓을 수 있던 기회였다. 앞으로 중국 제품을 살펴볼 때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날 것 같다. 디지털 기술이 독재자에게 쥐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면 시간을 들여 《디지털 실크로드》를 읽기 바란다.
기술은 새로워졌지만 개발과 통제라는 두 가지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참고>
※ 썸네일 출처: www.bbc.com/korean/news-43194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