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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아버지가 끝내 용기내야 하는 이유

오만가지 사람마음 25

우유부단한 아버지

우리 주변엔 '강압적' 아버지가 있지만, '나약한' 아버지도 있다. 강압적 아버지의 특징이 폭력이라면 나약한 아버지의 그것은 우유부단함이다. 일관적 태도보다 상황에 따라 변덕이 심하고 어찌할지 모르며 자기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가족만이 아니라 자신도 부정하며 산다.

여자들은 우울하면 수다로 풀지만 남자들은 우울하면 말을 하지 않는다. 나약한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는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말도 속으로 많이 할 뿐이다. 아버지가 말이 없다는 것은 폭력 보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말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녀들이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모르는 탓이다. 

무기력을 따라하는 자녀

김 군은 고등학교 시절 전교 10등 안에 드는 수재였다. 모든 사람들은 김군의 영특함을 칭찬했지만, 김군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붕 뜬 상태로 사는 기분이라고 한다. 어떤 일에도 자신이 없고, 무슨 일이든 자신의 잘못처럼 여긴다.

어떤 상처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과장된 행동도 하고 즐거운 것처럼 가면도 써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인 것을 느낀다. 연애는 시들하고, 공부는 더할 여력이 없다. 그렇게 살던 중에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 무엇을 시도해보라고 종용해도 그는 한 두 번 하고 그만 두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이 공부를 잘하면 엄마는 즐거워했고 교회에서 자랑하기에 바쁘셨다. 반면 아버지는 아무 말과 표현이 없이 묵묵히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사시는 분이었다. 상담을 하는 동안 김군은 엄마의 칭찬과 기쁨은 받고 살았지만, 아버지한테서는 항상 눈치를 보고 살았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1등을 하면 아버지는 기뻐하실까?', '내가 좋은 대학을 가면 좋아하실까?', '내가 돈을 잘 벌면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하실까' 등등을 생각했지만, 말도, 표현도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혼란을 주기만 하는 존재였다.

김군은 아버지의 모습처럼 자신도 두려워하고 무기력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또 다른 불안이 몰려왔다. 자기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세상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말수가 줄어드는 자신을 바라본다. 공부를 잘했어도, 열심히 살고 있어도 무기력감은 줄어들지 않고 점차 말이 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버지에게 기댈 수 없다는 사실에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직장인 연선(가명) 씨는 즐겁게 살다가도 마음이 훅 꺼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 현상이 오래전부터 계속 됐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그녀는 오래전부터 귀신을 보게 되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고통을 더듬어갔다. 고등학교 때는 깡패 같은 일진을 피해 도망치다 어깨가 부러진 경험도 있었다. 그녀는 일진들이 무서워 학교를 간다고 하면서 창고에 피해서 숨어 있다가 집에 오기도 했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왜 말을 못했는지 물어보는데,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유약했다. 술을 먹으면 자신의 신세를 탓하곤 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형제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칼에 복부가 찔려 피를 흘리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어린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회에 더 열심히 다녔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신앙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신앙이 깊어질수록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귀신을 쫒기 위해서 더 기도해야 했고 기도를 하면 귀신은 더욱 자신을 괴롭혔다.

정신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상담을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 한참이 되어서였다. 상담심리치료를 비신앙적으로 생각했기에 미루다 미루다 간신히 문을 두드렸다. 그런 그녀에게 귀신에 대항해 보라고 한 후 그 상황을 재연해 보기로 했다. 적극적인 상상으로 귀신을 불러오자 입에서 거품이 나오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경까지 됐다. 그 모습은 귀신이 아니라 억눌린 고통과 두려움의 찌꺼기 같아 보였다. 인생의 힘든 일들을 혼자 견디고 해결하면서 귀신을 만들고 싸우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영화 '아이 앰 샘'의 스틸컷. 장애인이 아버지가 똑똑한 딸과의 부녀간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용기내어 자녀를 보살피자

이처럼 아버지라는 정신적 토대가 빈약하면, 자녀는 자기 삶의 기반을 스스로 구축하게 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마음의 기둥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많은 것을 해주지 않아도 존재로서 마음의 안정을 준다. 돈을 많이 벌고, 능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의 등을 타고 놀았던 기억, 아버지와 여행을 갔던 기억, 아버지와 화투를 치며 명절을 보냈던 기억, 아버지와 물놀이 했던 기억이 살면서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된다.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정서적 에너지는 학교에서 줄 수 없으며 사회 어떤 프로그램도 채워줄 수 없다. 오직 아버지가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인들을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은 아버지를 정신적 토대로서 그리워한다.

인생을 살면서 아버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나태주 시인)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김현승 시인).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이탄 시인).

소주잔도 건넬 수 있을 텐데 그것조차 마다하시고 기어코 떠나버린 아버지(박상천 시인).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정호승 시인). 

자녀가 먼 훗날 당신을 그리워하며 추억을 이야기할 만큼, 당신은 자녀에게 정서적 보살핌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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