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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Sep 18. 2020

외국인 남편의 육아휴직

남편이랑 하루 종일 집에 같이 있는다면

둘째 아이를 갖는 것을 고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출산을 두 달 앞두고 있는 임산부의 몸이 되었다.

시어머님이 계시다가 없으니 할 일은 두배로 늘었고 출산일에 가까워질수록 첫째 아이를 보는 것도 힘에 지쳐가는 이때 드디어 샤로프든이 이번 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샤로프든이 일하는 생산직 공장은 외국인들도 있었고 나이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남편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자기 내가 공장에 전화해서 대신 말해줄까?

아니야 내가 말할게.

(눈치나 당하며 말을 잘 못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하였는데 남편도 한국에서 한국 밥을 먹은 짬이 있어서 그런가 능구렁이처럼 잘도 말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사장님이 육아휴직 왜 쓰냐고 투덜거리길래 내가 더 큰소리로 말했어!

뭐라고?

사장님! 한국 여자 알잖아요. 와이프 진짜 무서워요. 했어

........................;;


이런 말을 할 때면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듣던 우즈베키스탄 남자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는 듯하다.


사장님과 대화한 내용은 순식간에 공장 전체에 퍼져 아주머니들은 인터넷에 찾아가며 본인들의 일인 양 하루 종일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외국인 친구들은 부족한 한국어를 써가면서 너도나도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저출산 국가인 한국과는 다르기에 임신과 출산에 있어 한국만큼 좋은 복지를 갖고 있지 않는 까닭에  출산 전 임신했을 때 주는 바우처 지원금과 출산 후 주는 지원금 그밖에 남편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휴가와 함께 오면 휴직급여까지 놀라워하면서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쨌든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밤늦게까지 일하는 생산직 근무로 얼굴 볼 시간도 많이 없던 남편이어서 주말이면 껌딱지처럼 붙어있고 싶어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하루 종일 남편과 붙어서 지내게 되니 아직까진 마냥 신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샤로프든의 한국생활 9년 차인 지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걸 잘 알았기에 남편의 육아휴직을 나는 남편보다 더 원했고 육아보다는 휴식을 하는 동안 제대로 된 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곧 있을 영주권 시험과 함께 한국어를 좀 더 외국인 같지 않게 잘 해냈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이렇듯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시간에 쫓겨 좀처럼 무언가 하지 못했는데 육아휴직으로 가족과의 시간도 보내며 늘 외아들이자 두 딸의 아빠가 된 가장이라는 부담감에 쉬기를 꺼려했던 남편이 육아휴직급여로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고 20대의 마지막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인 나에겐 20대가 철도 씹어먹을 나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남편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나이라고 여기는 거 같아 항상 어깨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는데 우리에게 너무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았다.


오늘은 육아휴직 5일 차였는데, 샤로프든은 핸드폰도 열심히 보고 티브이도 열심히 보면서 휴식도 취하고 아이와도 놀아주고 공부도 하며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었다.

 샤로프든이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점은 밥을 도맡아 해 준다는 것이다. 어머님과 살 때는 어머님이 많이 해주셨는데 어머님이 계셔서 더 주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설거지도 하는 남편이 되어 있었다.(설거지는 절대 안 했던 사람이라 우즈벡 남자는 설거지를 못하나 싶었는데 집안일을 분담해서 하려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꽤나 감동받은 나이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요리를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해달라는 요리는 본인만의 방식대로 나름 열심히 만들어준다.

구글 이미지 -quymoq
샤로프든이 만든 아침식사-핫케익과 비슷한데 얇게 만들어 꿀이나 생크림에 찍어먹는 음식, 잼을 안에 넣고 말아서 만들기도 한다.

코이목은 고기를 넣어 브리또처럼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얇게 만들어 생크림이나 잼, 꿀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남편의 첫 도전이어서 모양이 형편없지만 정성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qazan kabob

점심은 평소엔 잘 안먹는 고기가 당겨서 남편에게 고기 요리 오더를 넣으니 카잔 케밥을 해주었다.

양고기와 감자를 기름에 푹 담가 튀기는 듯하면서 삶는 요리법인데 상상하는 그 맛이다. 이 음식을 먹을 땐 양파 샐러드로 느끼함을 잡아준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잠옷 바지를 2개를 사주었는데 이상한 거 샀다며 그렇게나 뭐라 하더니 유니폼처럼 번갈아 매일같이 입고 있는 남편이다.

쉬어보지도 놀아본 적도 많이 없는 남편이 집에 있는 생활에 100% 적응한 가정주부의 모습 같았다.


아무리 좋아도 계속 붙어있으면 싸우게 되는 걸 알기에 내가 요즘 신경 쓰려는 것 중 하나는 아침에 감사일기를 열심히 쓰는 것이다. 어머님까지 우즈벡으로 돌아가신 이때에 다툼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라고나 할까. (싸워도 갈 데도 없이 같이 있어야 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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