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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Jul 05. 2023

그리움이라는 성장통을 앓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찻집...

기분이 묘하게 방방거리거나 자지러지게 우울할 때면 혼자서 찾는 찻 집이 두어 곳이 있다.

그곳에서 차 한 잔을 앞두고 앉아 있으면 오갈데 없이 촐싹대던 마음이 다소 차분해지면서 평상심을 회복할 수 있어 동행 없이 혼자 가기를 즐기는 곳인데 벌써 그 찻집과의 인연이 2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더 진심이었던 아주 소박한 찻 집은 십여 년 전에 그곳에 터를 내렸던 사람들이 떠나고 지금은 누군가가 머물다 간 흔적만 쓸쓸하게 남아 있지만 나는 근처를 지날 기회가 생기면 여전히 댐과 호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안개를 동무 삼아 작은 오솔길을 걸어 그곳으로 가보곤 한다.


다른 한 곳은 이십여 년 전,

그 시절에도 몇몇의 성고객들에게 사랑을 받던 곳인데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 혼자만의 시간을 느긋하게 갖는다는 것이 편치 않아 가지 않지만  그 두 곳은 아직도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찻집으로 간직되어 있다.



나는  커피나 차를 무척 좋아하지만 솔직히 그것들에 대해서는 민망할 정도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차가 좋고, 그곳의 사람이 좋고 분주한 세상에서 잠시 비켜선듯한 그곳의 적막함을 좋아할 뿐...


지금은 그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전통 찻집은 한적농로를 얼마큼 달리다가 어릴 적 내가 뛰어놀던 고샅과 닮은 골목길로 들어서 아주 작은 유리창을 가진 집 서너 채를 지나다 보면 만날 수가  있다.

겉으로 보아선 아름다운 고택이구나 생각이 드는 그런......


처음에는 어떤 그림 그리는 이가 작업실로 쓰기 위해 낡은 집을 오랫동안 고쳐서 지내다가 어느  다실로 개조를 했고 알음알음 입으로 전해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진 곳이다.


마당 한쪽에는 제멋대로 자란 듯 보이지만 무질서 가운데서도 나름 서열을 정한 듯 보이는 접시꽃, 맨드라미, 분꽃, 물망초들이 올망올망 피어 있다.

마당 한 켠에 있는 늙은 장독대의 항아리들...

여름엔 그 장독대 한 켠에서 낙숫물을 받아먹고 자라는 키 작은 채송화가 있고...

작은 가시연이 앙증스럽게 하얀 솜털을 햇빛에 빛내고 연못 위 수련사이로 참개구리가 헤엄치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낡은 담장 아래로는 기르는 식물이 자라는 남새밭...

다실 뒤로 들쑥날쑥 솟아오른 대나무들...

그것들이 영락없이 어릴 적 내가 살던 우리집과 닮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자꾸만 그곳에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선 마시지 않고는 여간해서 향에 취할 수 없는 수줍은 녹차를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차를 우려낸 녹차잎으로 만든 녹차 범벅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줄 수 있고, 눈이 오는 겨울에 계절을 잃어버린 개나리꽃이나 공작초같은 들꽃이 다기 속에 몸을 묻고 그곳의 주인공인 녹차의 수줍한 향기와 동무하여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처음 나를 데리고 간 지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찻집'이라는 이름표를 그곳에 달아 거침없이 내게 내밀었고 나 또한 창으로 보이는 남새밭과 다탁 위에 벌러덩 드러누운 초가을볕을 보면서 그 이름표에 격하게 동의하게 되면서 내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찻집이 되었다.




또 한 곳,

어느 늦가을 새벽같이 출발한 출장길이 250km가 넘어서면서  돌아가는 길이 그저 착잡할 때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댐으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서는데 四海春이라고 적힌 작고 낡은 나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四海春....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 쉽지 않은 이름과 행색이 초라한 작은 나무 간판이 궁금해서 차를 세워놓고 오솔길을 걸어봤다.


새들마저도 잠들어 버렸는지 그저 고요하기만 한 길을 내 그림자를 벗 삼아 얼마쯤 걸었을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서 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연기를 따라 가자 구릉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작은 너와집을 만날 수가 있었다.


정돈되지 않는 뜨락의 길다란 풀들 사이에선 사마귀가 장대높이 뛰기 선수처럼 풀쩍풀쩍 뛰고 있고 이름을 알 수 있는 풀꽃들이 지나가는 바람에게 안부라도 묻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 인기척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기척 없는 그 고요가 무서웠을 텐데 그 무서움을 앞뒤 분간 모르는 내 대책 없는 호기심이 잠시 잊게 했던 것 같다.


시커먼 문고리가 달린 나무문을 슬쩍 당겨보니 늦은 낮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라도 켜듯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뿌지직 열린다.

차탁 두 개가 드러난 배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길다랗게 누워있다.


목소리를 높여 "안녕하세요?"라는 내 인기척에 반응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신발을 벗고 문이 열린 방을 들여다보니 낡은 이젤에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작품 하나가 놓여있고 벽마다 많은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그림 그리는 이의 작업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림을 대충 둘러본 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등을 벽에 기대고 차탁의 물 한잔을 따라 마시고..




그러다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소리가 자박자박 들려 흠칫 놀라 눈을 떠보니 귀밑머리가 허옇게 센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감자 하나 드실래요?"라고 물으며 내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삶은 감자를 담은 접시와 새콤한 오미자차를 차탁에 올려놓는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오면서 낯선 남자가 건너는 감자와 새콤달콤한 오미자차를 허겁지겁 먹고 나니 그제야 아직 눈에 걸려있던 선잠이 도망간다.

그렇게 만났다.

사해춘과 남자를.........




내 방문이 빈번해지던 어느 날 비로소 그에게서

사해춘이라는 이름이 '남조선 뱃노래'에서 나오는 '용담수류 사해춘(龍潭水流 四海春)' 용담의 물이 흘러 전 세계에 봄이 된다는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좁은 의미로 보자면 댐과 호수의 물이 흘러 세상을 봄으로 만든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댐과 호수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를 보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내의 암수술 후 요양차 서울에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가였던 부부가 안채를 짓고 그곳에서 요양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어느 날 문득 사람이 미치도록 그리워서 별채인 너와집을 짓고 그곳에 작업실을 차리고 차탁 두 개를 들여놓았다고 한다.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 대부분은 부부의 지인이거나 나처럼 호기심으로 찾아온 이들이다.


찾아가도 호들갑을 피우지 않고 외출했다 들어온 가족처럼 무심하게 마주하는 남자도 너무 편안했지만 무엇보다도 외로움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그들 부부를 떠올리면 내 평범함에 대한 우울함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버리고 오로지 적막만이 남았을 때 나는 적막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곳은 찻값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문쪽에 놓인 작은 바구니에 이곳에서 위로받고 평온의 시간을 가졌던 만큼만 담아놓고 오면 된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가 화덕에 구워준 군밤과 군고구마를 먹고, 여름이면 찐 감자를 먹고,

가을이면 바구니에 담긴 머루를 한 주먹씩 입에 넣어 오물거리면서......




어느 날, 출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부산스럽게 TV앞으로 나를 부르며 화면을 가리켜서 보니 우울한 얼굴의 남자가 화면에 보인다.


리포터가 ***화가의 유작전시회라며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그는 아내에 대해 짧게 몇 마디하고 마이크를 밀어냈다.

금세라도 주저앉을 듯 그의 여린 몸이 휘청거린다.

아, 투병 중이던 그의 아내가 죽었구나.


그러고 보니 그 해 겨울에 내가 그의 화덕에 숨겨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꺼내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기억했다.

그 사이에 그의 아내의 병이 더 깊어지고 결국은 고통스러운 이승의 끈을 놓았고 그녀를 아끼던 벗들이 그녀의 유작전을 연 것이었다고 한다.


예상된 이별이었겠지만 그의 슬픔 마주할 자신이 없어 여름이 오도록 가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나처럼 그곳을 좋아하던 후배와 함께 갔을 때는 나무문에 시커먼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어떤 단어 하나 에 걸치지 않은 채 나무문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이후로 그는 내가 아는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TV에서 봤던 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남자의 모습이었다.

한없이 작고 초췌한 남자............


우거진 풀숲에서  장대높이 뛰기를 하던 사마귀가 먼저 손님을 맞는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찻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나였다.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심미적인 것이어서

누구와 함께 차를 마시느냐따라 달라질 수도 겠지만....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사해춘이 그립고,

귀밑머리가 하얗게 셌던 그 남자가 그립다.

그리고,

시간들 속의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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