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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Che Mar 29. 2022

<조커>: 스탠리 큐브릭급 영화

영화는 거울이다(11편): 슈퍼히어로 영화인가? 사실주의 영화인가

  최근 3년 사이에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몰입해서 본 영화는 <기생충>이 아닌 <조커>였다. 사실 난 SF영화나 슈퍼 히어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배트맨 시리즈를 리부트(Reboot)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2005)와 <다크나이트>(2008)를 제외하고 말이다. 2019년 <조커>가 개봉했을 때, 또 DC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 아류라고 생각했는데, 그 영화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하게 여겼다. 소위 슈퍼히어로 영화가 흥행은 몰라도, 예술영화가 강세인 그런 국제영화제에서 평가받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함에 못이겨 얼른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는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활용한 극사실주의 영화였다. 물론 가상의 설정이 있기에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주인공 아서 플랙이란 인물이 매우 현실감 있고, 공감이 되어서 그런지 영화 속에 나도 모르게 훅 빠져들었던 것 같다. <기생충>과 다른 차원에서 보편적인 감성과 풍자가 뛰어났다. 아마 그랬기에 <조커>는 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역사상 최초의 R등급영화가 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을 것이다.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리얼했고, 작위적인 할리우드식 C.G가 없어 매우 현실감있게 다가온 영화였다. 마치 켄 로취나 라스폰 트리에의 과격한 헐리우드 버전을 본 느낌이었다.

  <조커>를 만든 감독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취향의 코미디인 <행오버>(2009)등을 만든 토드 필립스 감독이란 걸 알고 의아했다. 아니, 이런 감독이 어떻게 <조커>를 만들 수 있었지? 물론 그가 나름 성공적인 상업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작가주의 영화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역시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도, 때론 작품 선택의 운(運)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간 토드 필립스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고, 각본 겸 감독의 지분만 7천만 달러 정도라니... 영화 한 편으로 감독에게 800억! 부럽기만 하다.


"스탠리 큐브릭급 영화다" 마이클 무어 감독

  그럼 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걸까?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는 이 영화를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한 남자에 대한 탐구’라고 하면서, 거친 캐릭터 연구일 뿐 아니라, 일종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그저 ‘친절함과 공감에 관한 영화’라고 하면서 주제가 현대사회를 반영할 순 있지만,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조커>는 가족과 사회에서 무시당하던 고독한 청년 아서 플렉이 우연히 총을 손에 넣게 되면서 이 사회에서 극단적인 저항을 통해 빌런(Villain)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참고로, 여기서 ‘빌런’이란 의미는 원래 ‘악당’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요즘 들어선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괴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그가 빌런이 되어가는 동기는 공감되지만, 그 결과는 사실상 너무 파괴적이고 카오스 그 자체다. 물론 그게 아서플렉이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의 주제는 주인공 아서 플랙의 대사 한 마디로도 요약된다.


“나나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코미디였어”


  이 아이러니한 대사는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유명한 말과 겹친다. <조커>는 결과적으로 사회나 부모에 대한 반항, 그리고 개인적인 콤플렉스 및 소외감을 극단적인 반항과 대응으로 치유해 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기획 단계에서 워너 브러더스는 그야말로 빌런이 주인공인 이 시나리오가 ‘너무 어둡고 폭력적’이라 제작을 주저했다고 한다. 초기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조커로 캐스팅을 고려했지만, 그와 스케줄이 안맞은 덕분에 호아킨 피닉스가 이 영화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차선책은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각본을 쓴 토드 필립스와 스콧 실버는 코믹스의 ‘조커’에서 출발했지만, 빅톨 유고의 원작을 영화화한 1928년의 무성영화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다크나이트>에서의 배트맨의 기원과 전사가 <배트맨 비긴스>에서 보여지듯이, <조커>는 빌런인 조커의 기원과 전사가 묘사된다. <조커>는 광적인 팬들도 많지만, 그 묘사와 주제의 광기 및  위험성으로 인해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조커>를 스탠리 큐브릭급 영화라고 극찬했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의 광적인 팬이라고 지지했지만, <파이트 클럽>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이 영화를 다른 작품에서 이것 저것 훔쳐와서 만든 일종의 헐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라고 비판하면서,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드라이버>(1976) 주인공 트라비스 비클과 <코미디의 왕>(1983)의 주인공 루퍼트 펍킨을 합체해서 정신병원에 가둬서 만든 거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물론 핀처 감독의 비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이클 무어나 델 토로 관점에 동의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 묘사와 배우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나는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배트맨보다 조연급인 조커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꼈는데, 그 원인은 히스 레저의 연기가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런 배우가 나오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커>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히스 레저와는 다른 차원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조커>의 시대 배경은 1980년대초 고담시다. 배트맨 시리즈 영화가 주로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고담시는 뉴욕의 별칭이기도하다. 스토리는 병든 어머니와 거리의 광고판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청년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철저히 그의 시점을 따라 가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어간다. 플렉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려있고, 복지 혜택으로 정기적인 심리상담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의 꿈은 코미디언이라, 유명한 TV쇼의 진행자인 머레이 프랭클린을 아버지같은 우상으로 섬기고, 그 자신도 종종 코미디클럽에 가서 시덥잖은 코디미를 실연하기도 한다. 부자이자 유명 정치인인 토마스 웨인이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만나기는 어렵다. 어머니가 그의 집에 가정부로 있으면서 관계를 가져 자신을 낳았다고 알고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고통스럽고 힘들 때 그는 담배를 피우고, 혼자서 춤을 춘다. 그런 그가 어느날 우연히 직장 동료에게 총을 얻게 되고, 광대 분장을 한 채 지하철에서 한 여인을 괴롭히는 금융사 직원들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일반적인 배트맨 시리즈에서 주인공 배트맨의 강력한 적대자는 조커였는데, 이젠 조커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강력자 적대자는 없다. 그저 몇몇 조연급 캐릭터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즉 토마스 웨인, 직장동료 랜들, 지하철에서 만남 금융사 직원들, 머레이 프랭클린, 나중에는 어렸을 때 자신을 학대한 걸로 추청되는 그의 어머니 정도다. 그렇다고 그들이 강력한 악은 아니다. 그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조커의 진짜 적대자는 불친절하고 예의없는 불특정 시민들과 사회 시스템이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게 된 이유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가진 불행이 어느 한 인물(적대자)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권력자들과 인간의 무례하고 불친절한 행태가 문제라는 것으로 몰아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반에 가서 수많은 시민들이 아서플렉처럼 광대 분장이나 가면을 쓰고, 폭력시위를 할 때, 묘한 쾌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클라이막스에서, TV쇼에 나온 아서 플렉이 금융맨들 셋을 죽인 사건을 고백하며, 그들이 ‘너무 못되게 굴고, 예의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서 죽였다’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42년간 범죄와 폭력의 원인을 연구했다는 학자 아드리안 레인은 영화 <조커>가 ‘분열형 성격장애를 가진’ 아서 플렉을 통해 범죄의 정신심리학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범죄심리학 수업때 이 영화를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와 아이러니 활용

  이 영화 역시 많은 모티프를 일관되게 활용해서 스토리 및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다. 상황의 모티프로는 코미디쇼, 정신과 상담, 머레이 프랭클린쇼를 사용하고, 아서 플렉을 위한 캐릭터 모티프로는 참을 수 없는 웃음병, 망상증, 광대 분장(조커)이 있고, 소도구 모티프는 총, 흡연, TV, 일기장, 편지 등이 있다. 행위의 모티프로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추는 아서의 춤, 그리고 손가락 총 흉내가 매우 극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아이러니 역시 잘 표현되고 있다. 아서는 그 자신의 삶은 우울하지만 겉으론 웃을 수 밖에 없는 병에 걸렸고,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막상 그 자신은 우울해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웃사이더인 아서가 우연한 살인 덕분에 남들의 우상이 되고, 삶의 활기까지 찾게 된다는 것도 큰 아이러니다.

패러디로 조합: <택시드라이버>+ <코미디의 왕>

  <조커>를 DC코믹스나 슈퍼 히어로 영화 관점에서 보면 무척 신선해 보이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이 비판적으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수많은 패러디로 조합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현대 예술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영화란 없다. 알고보면 다들 과거의 영화나 다른 예술작품에서 영향을 받곤 한다. 그런데 조커는 유난히도 레퍼런스(참조한 영화들)가 많다. 그런 경우 자칫하면 표절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의 경우, 매우 창의적으로 기존 영화들을 재해석했기 때문에 평가받을 만하다. 사실, 퀜틴 타란티노가 그랬듯이, 영화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없다면 패러디를 통한 재창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만큼 <조커>의 레퍼런스를 살펴보는 건, ‘패러디를 통한 재창조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는 길이다.

  기본적으로 <조커>는 빅톨 유고의 <웃는 남자>와 그 소설을 각색한 무성영화 <웃는 남자>(1928), 그리고 DC코믹스의 그래픽 노블인 앨런무어의 [킬링 조크](1988)의 광대 캐릭터에 기반한다. 그리고 아서 플렉의 캐릭터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할 때 많이 참조한 영화는 컬트영화로 유명한 <록키호러 픽쳐쇼>(1975), 그야말로 코미디의 황제 찰리 채플린, 그리고 무성영화시절부터 배우이자 무용가인 레이 볼거(1904-1987)의 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커>의 캐릭터와 플롯, 모티프 등에 가장 영향을 준 핵심 패러디 대상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드라이버>(Taxi Driver, 1976)와 <코미디의 왕>(The Kinf of Comedy, 1982)이다.

  아서 플렉이란 캐릭터는 <택시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라비스 비클과 <코디미의 왕>의 루퍼트 펍킨을 절묘하게 조합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혼자 또는 어머니와 사는 외로운 남자라는 설정은 <택시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에서 가져왔다. 흥미롭게도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옆집 사는 흑인여성에 유난히 관심을 갖는데, 스콜세지의 그 영화 두 편의 주인공들과 유사하다. 아서 플렉이 망상증 환자이면서 코미디쇼에 메인 게스트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플롯은 <코미디의 왕>의 주인공 루퍼트 펍킨에서 거의 가져왔다. 살인을 하고도 영웅이 된다는 플롯은 <택시 드라이버>에서 왔다. 그 외에도 총, 우연한 살인, 일기쓰기와 같은 소도구 모티프를 <택시드라이버>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활용했다. 감독 토트 필립스는 자신이 많이 패러디한 스콜세지 감독에게 노골적으로 오마주라도 하듯이 의도적으로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로버트 드 니로를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선망하는 대상인 머레리 프랭클린 역을 맡겼다.

  <조커>의 카메라나 촬영 등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노골적인 C.G나 폼잡는 카메라보다는 주인공과 상황을 매우 현실감있게 표현하는 데 집중한 느낌이다. 물론 <택시 드라이버>처럼 종종 슬로우 모션을 활용해 주인공 이미지를 표현하긴 했지만, 그런 무빙 테크닉은 매우 효과적으로 인물의 심리를 시각화하고 있는 편이다.

  패러디도 재능과 노력이 있어야한 재창조가 가능하다. 멋진 패러디로 가득찬 영화일지라도, 최종적인 작품은 작가 본인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주제가 표현되어야 한다. 내가 볼 때, <조커>는 그런 점에서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조커>가 2020년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으로 인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호아킨 피닉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연기와 캐릭터의 진가를 객관화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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