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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Jul 21. 2023

인기 기관사 홍인기 레이노입니다

다들 안녕하시죠

 “기차도 핸들이 있나요?” 

기관차 운전실에 핸들은 없다.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에 핸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기관사는 속도를 조절해 정해진 구간을 운전할 뿐이다. 축구 선수가 축구공을 가지고 드리블하는 것처럼 기관사는 열차를 운전하며 선로를 달린다. 드리블을 잘하는 선수는 상대 태클에 걸리지 않고 곧장 골대로 향한다. 운전을 잘하는 기관사는 기관차와 연결된 다른 차량과 덜컹거리지 않고 정거장에 도착한다. 이때 자신에게 허용된 속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군인에게 총이 생명이라면 기관사에게는 속도가 생명이다. 열차 속도는 차량 종류, 정거장, 신호, 선로에 따라 다르다. 오늘 다녀온 무궁화호 열차를 대전역에서 동대구역까지 예로 들면, 무궁화호 열차는 최고 속도가 150km/h이다. 대전에서 동대구까지 경부선 선로 최고 속도는 135km/h이다. 정거장 통과 속도는 130km/h이고, 곡선 통과 속도는 굽어진 정도에 따라 90~125km/h까지 다양하다. 저마다 다른 구간을 충격 없이 약속된 시간까지 도달해야 한다. 사실 움직이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어렵다. 멈추기 위해서는 제동을 써야 하는데 기관사에게 제동은 군인이 총을 가지고 쏘는 일과 같다. 총은 사격이 잘돼야 하고 열차는 정차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 기관사는 멈추는 게 실력이다. 철도 이야기도 이렇게 그치지 못하고 늘어지면 지루해질 수 있다. 벌써 군대에 축구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당신의 일 너머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세 아이 아빠로 사는 철도 기관사 이야기다. 내 하루는 온통 기차와 사람들로 들어찼다. 아내, 부모님, 친구들, 동료 기관사 그리고 아이들로 가득하다. 모태 신앙으로 성당 신부님 되어서 예수님 따라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내와 술 따르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전하고 있다. 아내와는 성당 청년회 활동하면서 눈이 맞았다. 그땐 죽고 못 살았는데 지금은 살고 있는데 죽겠다. 남다른 일 한다고 사는 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가 서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글쓰기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기차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할 수 있다. 나는 기관사다. 철도를 가지고 놀고 있다. 열차 운전은 고단하지만,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알면 놀기도 좋다. 쉬는 날 철도 관련 책을 읽고 기차 여행을 즐긴다. 해외 나가도 기차를 타야 성에 찬다. 하지만 혼자 놀면 재미없다. 철도를 알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내가 유럽 여행을 비행기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제안하는 날까지 애쓰려 한다.      


 나이 들수록 말은 줄이고 글은 늘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관차 운전실에서 새로 들어온 부기관사에게 온종일 떠들고 집에 돌아온 날 공허함을 느꼈다. ‘괜한 말을 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철도 이야기를 글로 써서 독서동아리 밴드에 올렸을 때 신입 부기관사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잘하는 친구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랐다. 누군가 억누르지 않고 자율에 맡기지만 나도 할 말 다 해서 흐뭇한 느낌이랄까. 직장에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그즈음 말보다 글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글도 자주 쓰다 보니 즐기게 되었다. 글을 쓰면 좋지 않은 감정들이 사라진다. 집안일에 이상 반응을 보인 아내와 다투고 난 뒤 글을 쓴 적이 있다. 집 나와 카페에서 뿔난 상황을 쓰다 보니 ‘잘못이 내게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머쓱해져 집에 기어들어 가는 효능을 맛봤다. 혹여나 글 쓰고도 내 잘못에 눈 뜨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덕분에 글 한 편 썼네’     


 생각하고 겪은 일들을 적었다. 세례명 ‘비오’를 따서 ‘레이노(rain5)’라는 별칭도 만들었다. 다 쓴 글들은 가을 곡식 저장하듯 브런치(Daum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때론 투고하고 기고 부탁도 받으면서 글들이 조금씩 소개되었다. 회사에서는 사보 기자로 활동했다. ‘생활성서’라는 천주교 월간지를 발행하시는 수녀님과 인연이 닿아 1년 동안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요즘은 한 동네 사는 작가분들과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내 글이 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네가 쓴 글도 책이 돼’라는 고마운 답을 얻었다.


 아내는 모른다. 써왔던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내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전에 내 글을 본 아내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았다. 책을 본 아내가 글에 등장하는 자신을 보고 놀랄 텐데 궁금하다. 

‘책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결혼하고 ‘아내 눈치’라는 아이템을 장착했지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솔직히 내게 기적 같은 일이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책 보는 일도 글 쓰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핸들이 없는 기차처럼 내달리지 않고 갈피 못 잡고 멈춰 섰을 게 뻔하다. 가끔 서로 사랑하는지 헛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내를 만난 건 기적이다. 기관사라서 기적 울리고 산다. 가끔 울려야 기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면 민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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