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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Jun 15. 2023

정말 뱃살이 문제일까

평생 뱃살 고민 없던 홀쭉이의 죗값

평생 살이 찌지 않아 고민이었다. 배불리 먹어도 체중은 항상 그 언저리를 넘나들었다. 밤에 라면을 먹거나 단것을 먹고도 큰 변화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체질이라고 했다. 그런 체질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 난 움직임이 많고 머리엔 잡생각 투성이라 그쪽에서 칼로리가 다량으로 소비된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실언을 들었다는 듯 장난으로(?) 버럭 화를 내곤 했다. 평생 뱃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은 안다. 하지만, 정말로 찌지 않는 걸 어떡하라고! 


서른 초반을 지나며 움직임이 적어지고, 꾸준히 하던 운동과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 맥주 한 잔이 주는 청량한 기분을 알게 됐고, 꼭 하루 한 잔 커피 마시는 습관이 들었는데 하필 시럽이 잔뜩 들어간 바닐라 라테였다. 대략 1년 만에 홀쭉했던 복부에 어린이용 튜브가 생겼다. 순식간에 생성된 뱃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고부터였다. 작은 사이즈의 청바지를 입어도 헐렁해 벨트로 허리를 꽉 조였던 과거는 저리 가라. 서랍에는 허리가 꽉 껴 못 입게 된 바지가 차곡차곡 쌓였다. 덩달아 커진 덩치 때문에 어깨라인이 마법처럼 줄어든 티셔츠는 이미 조금씩 헌옷수거함에 반납됐다. 그때 당시 옷가게에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지만 놓아줘야 했다. 그나마 입어야만 하기에 남겨둔 바지를 입으려고 시도할 때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옷방에 드러누워 청바지를 다리에 쑤셔 넣던 장면이 떠올랐다.


살 때문에 고민인 날이 찾아오다니.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헬스 트레이너는 홀쭉이 회원에게 근육을 붙여주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는 방법을 택하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1차로 살을 찌웠으니 이제는 근육을 붙이고 살을 태워보자 결심한다. 밤이 되면 가까운 개천가에서 조깅을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과 거리를 뒀던지 얼마 뛰지 않았는데도 헥헥 대는 소리를 내며 뛰고 걷기를 반복한다. 땀을 잔뜩 빼고 만족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체중계 위에 올라서면 변함없는 숫자 앞에 허망함보다 의심이 든다. 진짜 이 놈의 살이란 거 빠지긴 하는 거야? 속으로 성질을 부리며 체중계로 내려와 내일도 뛰어야 할지 먹을 걸 줄여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아니 그것보다 내일 입을 옷도 없다. 이번 주말에 쇼핑을 하러 갈 겸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을 때우고 바닐라 라테가 맛있는 집에서 커피를 마신 후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 마시며 기진맥진한 몸에 기운을 충전할 꿈을 꿔본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다.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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