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떨어진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봄이면 벚꽃이 화려하게 핀다. 쓰레기 주위에 떨어져 구르는 벚꽃잎은 그마저도 아름답고 소중한 보석 같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 이어지는 벚나무 열매인 버찌의 광폭한 행보는 시민들의 미간을 구기고 까치발을 들어 종아리 근육을 뻐근하게 만든다. 아름다움 앞에 어떠한 행동도 거리낌 없지만, 그 반대의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혐오를 드러내는 인간의 모순된 심리를 비웃는 듯하다. 그리고 하나의 벚나무에서 생성된 두 개의 개체물이 이렇게 완벽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 참 이상하다.
가을이면 버즘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갓 개봉한 감자칩을 와그작 씹는 느낌이랄까. 쾌감까지 온다. 나뭇잎이 햇빛을 가려서 생긴 그늘 밑을 걸으며 서울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것 또한 아주 환상적이다. 노랗게 물들어 포토존 명소를 만드는 은행나무는 열매가 떨어지면 악취에 가까운 아주 구수한 냄새를 풍기지만, 해충을 쫓는데 큰 역할을 하고 열매는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알려져 기력증진 음식의 재료로 애용되고 있으니 항상 감사하다고 표현해야 할 나무다. 그런데 이놈의 개살구나무는 언제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숨어있다가 이맘때쯤 긴가민가한 열매를 땅에 떨궈내놓곤 괜히 신경 쓰이게 한다. 알듯 말듯한 이 열매를 사진 찍어 검색해 보니 개살구라고 나온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의 주인공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실은 없는 경우에 쓰이는 속담에 땅에 떨어져 반쯤 찢어지고 물러터져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개살구를 갖다 붙였다니 참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 일요일 오후 갑자기 눈길이 간 개살구를 이 기회에 조금 탐구해 보다가 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개살구나무의 꽃은 벚꽃과 흡사하다. 꽃을 피우는 시기도 비슷하지만 개살구꽃이 조금 빠른 듯하다. 벚꽃을 기다리며 혹독한 추위를 견디던 때에 아름다움을 먼저 뽐낸 존재가 어쩌면 개살구꽃일지도 모른다. 사진첩에 저장된 벚꽃 앞에서 찍은 사진 중 몇 개는 개살구꽃과 찍은 사진일 수 있다니 소름. 개살구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최고의 미를 선사하고 인간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벚꽃처럼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마치 사기를 치듯 인간을 기만하고는 언제 졌는지 모르게 봄비 속에 휩쓸려 사라지더니, 주황색의 작은 열매를 떨궈내며 알게 모르게 계속 어필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개살구 열매는 잼으로 만들기도 하고 한방약재로도 쓰인다고 하니, ‘빛 좋은 개살구’ 속담은 남들이 개살구 열매를 주워가지 못하게 선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스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