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솔 Nov 03. 2023

밥 약속 부자 베지테리언

97년생 MZ esfj 신입 비혼주의자 베지테리언의 일기 2

회사를 다녔을 때도, 퇴사를 해서도 일주일에 밥 약속을 3개는 거뜬히 만드는 나는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고, 약속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esfj 4년 차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mbti로 나를 소개하는 방식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입체적이라서 e나 i, f나 t가 담지 못하는 영역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같은 infp라도 각자의 다른 점(n이 60인 사람의 모습, n이 80인 사람의 모습의 차이를 섬세하게 느낀다)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특징을 세분화해서 바라볼 줄 아는 점이 esfj의 특성이라고 하니 복잡한 나를 요약해서 소개하는 말로 한 마디 정도는 덧붙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지키고 싶고, 채식도 포기할 수 없어서 비건 대신 베지테리언으로 살고 있다. (*비건은 달걀, 우유 등 동물로부터 얻어낸 어떠한 생산물도 섭취하지 않는 식사를 한다. 베지테리언은 달걀, 우유, 해산물 등 일부 동물로부터 얻은 식품 형태를 섭취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을 버리지 못하겠는데, 동물은 먹고 싶지 않아서,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한 타협점이었다. 어떤 식사를 할지 선택권이 있을 때는 비건식을 먹고, 선택권이 다양하지 않을 때 해산물, 우유, 달걀을 먹는다. 그럼 꼭 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비건 식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중식집에서는 토마토 달걀 볶음을 먹거나 양식 메뉴 중에는 봉골레를 선택할 수 있다. 삼겹살집 같은 고깃집만 아니면 되는 정도로 선택 폭이 제법 넓어진다. 대신 완벽한 채식을 포기한 식사를 해서 한 번의 관계를 더 유지하게 되었을 때는 꼭 내가 섭취한 고통과 착취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과 식사 자리에서는 웃으며 그 분위기를 즐기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속으로 잠시라도 오늘 만들어 낸 동물의 고통을 애도한다.


동물권과 환경운동을 이유로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선택한 베지테리언 식단은 100% 만족스럽거나 행복한 식사일 수 없다. 달걀을 먹고, 우유를 먹고, 해산물을 먹는 단계는 비건식을 먹을 수 없는 식사에서 편의를 만들기 위한 선택지일 뿐, 궁극적으로는 모든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 가능한 적은 오염을 일으키는 비건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유는 소를 평생 임신 상태로 만들어 소젖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착취가 일어나고, 달걀 역시 닭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낮을 만들어 알을 낳게 하는 착취가 일어나기 때문에 덩어리 고기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고통이 일어난다. 결국에는 내 편의를 위해 잠시 흐릿하게 동물의 고통을 가릴 뿐이다. 누군가 “달걀은 괜찮죠? 우유는 먹는다고 했던가요?”라고 물어보면(근처에 비건 식당이 없어서 베지테리언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에 들어온 상황) 일단 괜찮다고 말하며 내 복잡한 생각과 행동을 숨길 때가 있다. 동물의 고통을 착취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 내 편의를 선택하는 모습이 단단하지 못해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 복잡한 마음을 설명하다가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져 역시 괜찮다는 말이 제일 나은 선택일 거라 믿고 속마음은 다시 깊은 곳에 감춰둔다.


혼자 먹는 비건식,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물성 식품이 섞인 식사 자리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긴 시간을 고민했지만 아직도 판단이 어렵다. 고통 없는 식사를 할 수 있을 때 행복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간에 따라가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웃는 행복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나만 느끼는 불편한 마음은 혼자 삼켜버리는 쪽이 더 편할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동물의 눈동자가 너무 아른거리는 날이 있다. 내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채식하는 식습관에 트집을 잡는 사람과의 관계까지 붙잡지는 않는다. 오히려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한다. 하지만 비거니즘을 실천하지는 않더라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에게 매번 내가 채식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비건식당에 가자는 제안을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취향과 시선이 궁금하고, 비거니즘이 아닌 다른 대화 주제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비건과 베지테리언의 무게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내게 대단해라고 말하지만, 나는 모든 순간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진짜 대단하지라고 말하며 내가 좀 더 마이웨이로 인생을 사는 캐릭터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인간관계에 남을 사람만 남는다라고 생각하고 동물 착취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환경운동을 위해 채식을 하자고 거침없이 말하는 영향력을 갖길 꿈꾸며 한 때 인스타그램에 컷툰을 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약간의 편의를 포기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전에 다른 비건 친구와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 단체 술자리를 함께한 적 있었다. 나는 우유가 섞인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나 튀김을 먹었고 그 친구는 술자리에서는 안주 없이 술만 마시면서 술자리를 즐길 줄 알았다. 그 친구를 보며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적당한 편의를 누리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포함된 선택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비건을 지향하는 삶은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다. 육식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채식을 시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 플렉시테리언, 베지테리언, 비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돌 횟수와 갈등의 깊이 차이가 있을 뿐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다. 회식 자리(사람에 따라 불편할 다른 이유가 많겠지만)가 불편해지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연애든 친구든 깊이 사귈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고민하게 되고, 건강 걱정이나 오해를 자주 듣게 되고, 외식 대신 도시락을 챙기기 위해 일상이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고기 맛집 앞에 몇 미터씩 줄을 서서 먹은 고기를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게시물을 보게 되거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 생태계에 방류해 버리는 뉴스를 보며 현실의 괴리감에 자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비거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며 겪는 내적 갈등과 외부 자극이 생각만으로도 불편하겠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비거니즘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기쁨이 더 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양한 생명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착취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로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데, 피해를 줄이고 다음 세대와 더 나은 환경을 나눌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 기쁘다.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1년 동안 채식을 하며 온실가스를 줄이고, 물을 아끼고, 생명을 구하는 조금씩 덜 파괴적인 선택을 하는 내 행동에야말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힘이 있을 뿐이다.




취업하고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삶을 선택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학생 때와는 또 다른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만난 분과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분의 마음에 동물의 고통을 착취하지 않고 싶은 의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채식을 하고 싶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채식을 하는 건 정말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때 그분에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분에게 그 말을 건네며 불완전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나에게 실망했던 시간을 놓아줄 수 있었다. 불완전했을지 몰라도 선택 하나하나에 비거니즘을 생각하고 진심을 쏟았던 순간이 선명하게 되살아 났다. 지난 4년 내내 해산물을 먹는 베지테리언으로 지냈지만 소, 돼지, 닭만큼은 고기를 먹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고기와 단백질을 신화로 만드는 풍경에 구역질이 났다면 모를까. 비거니즘은 마음에 먼저 와닿아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결국 하루, 한 번의 행동을 바꾸고 느리지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들기 때문에, 그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있는 선택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아직은 완벽한 비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서, 채식을 시작하면 관계가 틀어지고, 포기해야 하는 게 많은 것 같아 채식을 도전할 수 없는 장벽을 크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4년이란 시간이 조금 넘게 완벽한 비건이 되고 싶어 벽을 느끼고, 사실상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날 선 말을 듣기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생각, 내 행동, 내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의 이해와 기준에 나를 맞추기는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완벽하지 않은 베지테리언의 불안한 내적 갈등과 사람 관계를 놓지 못하는 미련함을 고백하는 용기를 내볼 것이다.


어제는 삼겹살은 안 먹는다면서, 육수를 낸 국수를 먹는 행동을 해도 괜찮고, 일주일에 한 번만 비건을 해도 괜찮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비거니즘에 대해 은근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아주 중요한 말이 있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완벽하지 않은 비건이 더 많아지는 게 낫다. 누군가의 비거니즘이 평생 완벽하지 않더라도,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마음 그 자체를 언제나 변하지 않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에 불꽃이 사라져서 퇴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