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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Nov 14. 2023

더 이상 언니 오빠라고 부르지 않을래

97년생 MZ esfj 신입 비혼주의자 베지테리언의 일기 4

필요한 예의범절만 지킨다. 불필요한 구시대적 사고는 버린다.

K-유교걸의 선택적 유교 인생관은 언니, 오빠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더 공고해지기 시작했다.


스물 초반,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한 친구를 알고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내가 원한다면 호칭 없이 자신의 이름만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변에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고 언니, 누나, 오빠, 형이라는 호칭 없이 동갑내기처럼 이름만 부르며 지내는 사이가 여러 명 있다고 했다. "말 편하게 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한국 사회에서 오빠,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미드에서 봤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시어머니 대신 그의 이름 엘리스를 부르고, 할아버지 대신 찰스라고 부르는 아메리칸 컬처를 한국에서? 생소한데 재밌을 것 같았다. 할머니 이름을 "말순~"부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우리는 같은 청년 세대니까 자연스럽게 시도해 볼 만했다.


한창 사람들과 편하게 더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 친해지고 싶은 연장자 상대를 만나면 슬쩍 반말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며 지내던 때였다. "말 편하게 해"라고 했을 때 "아, 괜찮아요... 놓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라고 했다가 애매하게 말 놓을 타이밍을 놓치는 상황을 몇 번 겪어본 후로는 연장자에게 반말을 할 기회가 생기면 단숨에 말을 놓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니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는 많아봐야 5-6살 터울이었고,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는 것보다 반말을 쓸 때 상대에게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활짝 열린 마음의 문과 다르게 막상 친구 얼굴을 보니 00 오빠, ㅁㅁ 언니에서 00아, ㅁㅁ 은 반말처럼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한 발 물러서 다음에 친구를 볼 때 그렇게 부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혼자 친구의 이름을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소리 내어 보았다. 어색하면서도 언니, 오빠보다 더 다정한 느낌이었다. 


이름을 부른다고 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닌데, 저마다 예쁜 이름을 두고 여태껏 왜 언니, 오빠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했었나 싶기도 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는 행동은 나는 수많은 언니나 오빠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유일한 사람과 지금 말하고, 눈을 마주치고 있어요.라는 마음을 담는 가장 좋은 표현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1단계로는 반말을 해도 괜찮은지 묻고, 2단계 이름만 불러도 좋은지 묻기 시작했다. 물론 장벽이 높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잘 골라낸 다음에 행동에 옮긴다.


예의범절과 위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K-유교 사회에서 1단계 반말은 어떻게 저렇게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어도, 2단계는 묻는 나도 조심스럽고, 받는 상대도 당황할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2단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빌드업이 필요했다. 


1. 일단 이름을 부르고 싶은 사람을 4-5차례쯤 만난다. 우리가 주고받은 마음 크기 활짝 열려있는지 대화 주제가 얼마나 넓고 유연한지 확인했다. 

2. 대화를 하다가 아주 화기애애한 타이밍을 찾는다. (서로 근황을 주고받은 지 1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쯤.) 3. 요즘 언니나 오빠한테 이름만 부르고 있는데~ 사례를 말한다.

4. 핵심 질문을 살포시 던진다. 그래서 혹시 내가 언니 이름만 부르는 거 어때? 


그래서인지 아직 2단계 이름만 부르는 관계되기에 실패한 적은 없다. 오히려 1단계 반말은 상대가 사회에서 만난 모두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이어서, 어떤 관계는 서로가 다 존댓말이 입에 붙어서 반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혹은 사람 관계에서 굳이 더 편해질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선을 긋는 상대를 만나 종종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연장자에게 맞는 호칭을 사용하고 존대를 하는 문화가 있는 덕분에 상대에게 공손한 태도로 다가갈 수 있고,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무조건 모두에게 편하게 반말을 하고 호칭을 없애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굳이 위계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는 불필요한 격식을 걷어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평범한 호칭에 분명히 위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있고, 위계에는 무게와 책임이 뒤따른다. "오빠가 할게." "누나니까 대표로 해." "내가 형이 잖니." "언니잖아, 괜찮아." 좋은 관계에서 연장자가 자발적으로 진심을 전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같은 말이 나이가 조금 더 많고 적다는 이유로 반강제성을 띄는 표현이 될 때도 있다고 느낀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부담을 만들지 않기를, 서로가 더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봐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르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별별(오빠), 구름이(언니), 쿨(언니), 김주(오빠), 쿄쿄(오빠), 리나(언니)처럼 이제 제법 이름만 부르는 사이가 꽤 많아졌다. 이름 두 글자만 부를 때도 있고, 성과 이름의 첫 글자 같은 별명을 부를 때도 있다. 언니, 오빠라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언니, 00 오빠라고 가능한 이름을 붙여 부르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 그 이름과 존재가 아름다운 사람에게 어떤 부담이나 수식도 없이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대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상대에게 내 표현 방식을 전할 기회를 살핀다. "너의 이름만 불러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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