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영화] 영화 '스틸 플라워'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주의!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갈 곳이 없어요” 라고 외치듯 하담은 묵직한 캐리어를 이끌고 거리를 방황한다. 주위는 반짝이는 전광판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지만 하담은 불편한 소음을 내는 캐리어를 들고 홀로 걷고 또 걷는다. 하담은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전단지도 나누어주고 세탁소, 음식점 등 여러 군데를 찾아가지만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데이고 만다. 돈을 주지 않거나, 머리채를 잡고 쌍욕을 하거나. 하담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에서 촛불하나를 켜고 그 누구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표정으로.
꽃다운 나이에 생존을 위해 힘겨운 사투를 하는 하담의 의지처란 “탭댄스” 단 하나이다. 횟집 음식점에서 돈도 받지 못하고 해고당한 후, 하담은 물고기 하나를 건저네 바다에 놓아준다. 마치 물고기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듯이. 바닷물 위에는 파란 빛을 비추는 배한대가 떠있고, 하담은 한줄기의 희망처럼 보이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탭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밑창이 떨어질랑 말랑 하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살고 싶다는, 또 자유롭고 싶다는 애처로운 몸부림이었다.
탭댄스 학원을 몰래 엿보곤 하던 하담은 신발장 위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놓아두고 탭댄스용 구두를 가져간다. 널따란 지하철 복도와 조명 불 하나가 켜진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하담. 탭댄스로 인해 하담은 좀 더 자신감을 얻게 되지만 그런 그녀에게 시련은 또 다시 닥쳐온다. 밉보였던 횟집 아줌마가 아르바이트 장소로 찾아와 탁자 위 접시들을 뒤엎고 욕을 하며 생판 난리를 친 것이다. 하담은 아줌마의 손아귀에 잡혀 질질 끌려가는 등 큰 수치심을 맛본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질타에도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선다. 탭댄스 구두를 신고 당찬 걸음으로 파도가 빗발치는 해안가로 향하는 하담. 몇 번이고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방어한다. 하담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희망의 미소가 다시 번져 피어난다.
카메라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줄곧 하담의 뒷모습을 따라다니며 촬영한다. 화면이 흔들리니까 불안정하고 초조한 하담의 심정이 그대로 나의 마음속에 전이되어졌다. 하담의 뒷모습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인해 “찍혀진” 느낌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 지게 해 하담의 모습은 자연스레 공감대를 형성해주었다. 마치 일상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달까. 영화를 보는 내내 거친 숨소리와 질질 끌리는 캐리어 소음이 들려온다. 캐리어가 질질 끌릴 때 나는 날카롭고 직선적인 소음은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듯 세상을 살아가려는 하담의 의지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표정변화가 없고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그런 하담의 얼굴은 고등학생 때의 나를 닮았다. 하담이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갔다면 나는 “입시”를 위해 처절하게 살아갔다. 아이들이 다 떠나간 점심시간, 홀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내 뒷자리에 앉은 한 아이는 내 뒷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인다고 했다. 마치 영화 속 하담의 뒷모습이 과거의 나의 모습같이 느껴졌다. 나는 ‘난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던 걸까?’, ‘과연 산다는 게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행복해지려고.’ 하담이 탭댄스를 추는 것도 그 이유이다. ‘웃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담은 우연히 탭댄스 학원에서 탭댄스를 추는 사람들을 보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탭댄스라는 부푼 꿈을 안고 여기저기서 서투른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하담. 따닥따닥 구두소리는 질질 끌리는 캐리어소리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경쾌하고 활기찼다. 바싹 긴장해있던 하담의 몸짓도 댄스를 출 때만큼은 자유롭고 여유로워보였다.
영화는 절제된 사운드로 전개되지만, 유일하게 가로등 하나가 켜진 보도에서 탭댄스 구두를 신고 뛰어다니는 씬에선 음악이 흘러나온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음조로. 절제된 사운드가 사실적이고 리얼리티적인 날카로운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음악이 도입되는 씬은 하담의 내면에 있는 “꿈”을 보여준다.
아무리 세상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탭댄스”라는 소박하지만 큰 꿈이 있기에 그것을 버팀목으로 또는 피난처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작지만 하담에게 꿈이란 다시 일어나게 하는 가장 큰 힘이자 생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인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주위 사람들은 지금이 꿈을 꿀 시기냐며 현실을 바라봐야한다는 잔소리를 종종 해댄다. 그러나 나도, 하담도 여전히 꿈을 꾸며 살아간다. 나는 “영화”라는 꿈을 ,하담은 “탭댄스”라는 꿈을. 나는 여기서 되묻는다. ‘왜 꿈을 꾸고 살아가는가?’ 꿈을 꾸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으며, 비록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간”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언젠간”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날을 향해 계속 열심히 달려가자’라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리처드 바크 소설가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우리는 나비라고 부른다.’ 라는 말. 나는 이 글귀가 <스틸 플라워>를 보며 제일 와 닿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영화 속 하담을 각박한 세상에서 꿈틀꿈틀 살려고 발버둥치는 애벌레라고 비유를 한다면, 언젠가는 꽃이 피듯 크나큰 나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목 “steel flower”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강철 꽃”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강한 사람이 이기는것이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꽃도 강한 꽃이 개화하는 게 아니라 개화한꽃이 강한 셈이다. ‘언젠간 꽃이 필거야.’ 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또 뭐든지 다 꿋꿋하게 버티어내는 하담을 보며 그녀를 “강철 꽃”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투박하고 거친 분위기로 전개된다. 하담의 표정 또한 아마추어처럼 항상 긴장한 듯 하게 보여지며 서투르고 빈틈이 많아 보인다. 우리 대개는 이런 보편화를 가지고 있다. ‘퍼펙트하고 완전한 것이 아름답고 멋진 것이다’라는 것. 중간고사 점수 50점 받아온 학생에겐 잔소리를, 100점을 받아온 학생에겐 닌텐도를 사주는 일도 이러한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스틸 플라워>는 완전하고 완벽한 것만이 멋지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버린다. 영화는 결과보다는 하담이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고 있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기 일쑤이며 사기를 당하는 사회초년생의 모습을 미루어 봤을 때, 하담의 모습은 어딘가 엉성하고 우울한 느낌에 가깝다. 그러나 하담은 다시 부딪히며 일을 계속 해나간다. 어딘가 서툴러도, 계속 나아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그래서 우리는 하담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고 그녀의 삶이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노란빛의 색감이 많이 등장한다. 하담을 불쌍하고 비극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의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호박색 빛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녀의 삶의 의지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하담은 파도가 빗발치는 해안가 앞에 서서 온몸으로 파도와 맞닥뜨린다. 몇 번이고 파도가 휘몰아쳐도 꿈쩍 않는 하담. 끝으로, 먼 바다를 응시하는 하담의 얼굴이 프레임 속에 포착된다. 그 얼굴은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건 바로 '웃음'이다.
글 / 씨네리와인드 유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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