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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어제는 태을암에서 엄마의 49재를 올려드렸다.

평생을 불교에 귀의해 살아온 엄마지만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한때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다.

중이 되겠다던 내가 기독교 집안에, 독실한 신자와 결혼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한 선택이었다

교회에서 목사님 두 분의 주례로 결혼하자 나의 비구니 설을 아는 친구들이

저 미친년 중 된다고 노랠 불러 쌌더니 이게 뭔 일이래? 이런 표정이었고

아이고 중 된다던 년이 애를 셋씩이나 낳았네 이러면서 놀려댔다ㅡ시골 사람들 '년'은 진짜 년이 아니고 애정이다 ㅎ

어쩌다 보니 교회도 절도 다니지 않는 무신자로 살았는데

엄마 덕분에  지장경 독송기도롤 올리고 절에서 49재 탈상을 하고 철저하게 불교도적으로 살았다

마음이 참 좋다ㅡ다시 삼귀의를 다짐했다.

형제들이 다 그럴 수 있는 건 철저하게 엄마를 사랑하고 존중해서다. 엄마의 믿음을 존중하고 그 믿음대로 보내드리는 게 효의 기본이라 본다

형식을 마치고  보살님들이 차려놓은 점심을 공양하고 설거지를 다 마치고 싸주신 과일이랑 떡 등을 나누고

임시로 모셔진 영묘전에 들러보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자손들은 회 한 접시에 술도 한잔씩 나누고 헤어졌다

덕분에 전날 밤 꼬박 새운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옆지기가 마침 생일이니 술잔을 안 받을 수 없는 상황

운전하고 오는데 계속해 마음 한쪽이 고장 난 거 같고 작은 구멍이 뚫려 그  구멍으로 뭐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이상했다.

옆지기 말대로 우린 이제 찐으로 고아가 됐다.

49일 동안은 정말 곁에 머물고 있다고 믿었다.

이제 극락왕생 하셨으리라 믿는다

당신 믿음대로 살았고

믿음대로 보내드렸으니 좋아하셨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제 씩씩하게 내 삶을 살아야지

울지 마 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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