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만나는 반짝 시장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여행지의 시장 구경을 좋아한다. 국내 여행 중에는 일부러 그 지역 전통시장을 찾곤 한다. 어쩌다 혼자 여행 중에 운 좋게 오일장을 만나면 십중팔구 장 구경에 빠져 다음 일정을 놓치기도 한다.
아쉽게도 나 어릴 적 읍내 나가면 늘 시끌벅적하던 장마당의 정서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어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시골의 상설 장은 한가하다 못해 썰렁한 지경이다. 장마다 서는 오일장에나 겨우 문을 여는 점포도 많다. 상설 장이 기능을 못하면서 아예 전통 오일장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곳도 많다.
국내의 오일장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구례 오일장이다. 구례 오일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맛과 멋이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이벤트처럼 의외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해남 송지 오일장은 내 첫 배낭여행에서 만났다. 마흔다섯 살이 되던 1월에 떠난 2박 3일의 첫 여행지는 해남이었다. 땅끝 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박을 하고 미황사에 가기 위해 송지면 터미널에 내렸다. 그날은 마침 1월 22일이었고 2.7일 장인 송지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미황사 가는 버스시간을 기다리다 장마당에 발을 디딘 죄로 그때부터 장 구경에 팔려 버스를 놓쳐버렸다 어릴 적 십리 산길을 걸어 학교에 다닌 전력이 있어 호기 있게 미황사까지 걸었다. 사서 고생한 기억이 있어 기억에 남는 장이다.
문경 오일장은 정답기 그지없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장 자체의 규모도 작지만 특이하게 할머니들 자리가 따로 있다. 가판대 자리마다 할머니들 얼굴과 택호가 적혀있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호칭인 00 댁으로 불리는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주 정겹다. 이렇게 장을 좋아하는 내가 외국이라고 장을 가볍게 여길 리가 없다.
비스바덴 시청 뒤 광장에 반짝 시장이 열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반짝 시장이라니 뭔가 보너스를 받은 듯 반갑다. 4년 전 뮌스터 여행 중에 경험했던 반짝 시장이 떠올라 더 호기심이 발동했다. 뮌스터의 시장이 대형마트라면 오늘 시장은 동네 슈퍼 수준의 작은 규모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단지 내에 열리는 요일시장 정도 되겠다. 작지만 골고루 다양한 우리 요일시장과 다른 게 있다면 채소와 과일 정도 매장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점심 먹으러 나온 길인데 그 장은 오후 2시를 전 후로 파장을 한다니 마음이 급하다. 밥 생각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 알아보니 원래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7시부터 2시까지 열리는 주간 마켓이란다. 정식 명칭도 Wiesbaden Wochenmarkt (비스바덴 주간 마켓)이라는데 우리가 간 시간이 거의 파장 시간이라 그런지 넉넉잡아봐야 열 군데 정도 천막 매장이 영업 중이었다. 매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돌아본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오색찬란한 색감이 황홀한 과일 전이다. 유럽의 과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랐고 맛있게 먹었던 것은 역시 납작복숭아다. 크기가 작은 건 영 아쉽지만 납작복숭아의 맛은 정말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벌써 꿀처럼 흐르는 과즙과 향기가 느껴진다. 철 막바지에 있지만 딸기는 역시 그 빨간 색깔이 여전히 유혹적이다. 과일 전마다 살구가 풍성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건 이들이 살구를 즐겨먹는다는 증거 같다. 마침 제철인 지역 특산물 체리가 가장 풍성하다. 연한 빨강부터 검붉은 색까지 색깔도 다양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라곤 하지만 평생 먹어온 우리나라 배 맛과는 비교 자체가 어림없는 배는 겨우 명색만 갖췄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서 몇 번 사과를 먹어봤지만 우리 사과처럼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다. 익숙한 것부터 낯선 것까지 온갖 과일을 구경한 후 우리가 푸룬으로 부르는 말린 자두가 아닌 생 서양자두 한 봉지를 샀다. 향긋한 자두 향에 침이 고인다.
채소 전은 과일 전보다 더 흥미롭다. 요리 좀 할 줄 안다고 자부하지만 역시 한식과 서양식의 차이만큼 한 번도 요리해보지 않은 생소한 식재료가 여럿이다. 그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감자다. 독일인들의 식재료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감자가 아닐까 싶을 만큼 감자 소비가 많은 나라답게 감자의 종류가 다양하다. 길쭉한 감자. 동그란 감자, 큰 감자, 작은 감자, 붉은 감자, 흰 감자. 노란 감자. 다른 것들과 달리 봉지에 담겨 있는 데다 봉지마다 양이 꽤 많은 것만 봐도 감자 소비량이 많다는 것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꽃시장은 의외였지만 황홀했다. 온갖 예쁘고 향기로운 꽃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마음 같아선 한 아름 사서 지성에게 안겨주고 싶었지만 지성의 집에 꽃병은 하나였고 그 꽃병에는 이미 전날 공항에서 마크에게 받은 꽃이 꽂혀있었다.
독일답게 육류와 햄, 소시지를 파는 매장이 하나, 빵과 제과를 파는 매장이 하나, 그곳들을 모두 돌아보다 우린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