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감정 마주하기

낯선 감정 마주하기

큰딸은 기어이 계획한 날짜에 독일로 출국을 했다.

원래 계획이야 한국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떠나서 공부를 하면서 정착을 하는 것이었다. 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 이국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 짬짬이 일을 하고 필요한 자격증을 따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출국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완전 출국을 하기 전 한 번쯤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국경이 닫혀버렸다. 독일과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다 팬더믹을 겪고 있는 상황이니 마냥 기다릴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애타는 순간을 일 년 넘게 기다리다 우여곡절 끝에 3개월 기한의 비자를 어렵게 받았다.

딸아이가 받은 비자는 독일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국제커플들에게 주어지는 비자다. 관광이나 일반 방문 비자가 아니기에 목적에 맞게 진짜 커플임을 증명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비자라니 낯설기만 한 일이었다.

딸에겐 3년 전 독일 교환 학생으로 있으면서 사귄 독일인 남자 친구가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영상으로만 만나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는데 기회가 왔으니 일단은 가야겠다고 했다. 어차피 비대면에 제대로 운영도 안 되고 있는 어학코스 같은 거 따로 준비할 틈도 없이 부랴부랴 독일 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한 후 코로나 반응 검사까지 마친 후 비행기에 올랐다.

딸이 떠나는 날 공항에 배웅을 갔다. 인천 국제공항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경한 광경에 놀랐다. 여객터미널 3층은 텅 비다 못해 썰렁하기만 했다. 체크인 카운터는 거의 다 비어있고 한두 군데만 띄엄띄엄 승객이 보였다. 출국장 앞에서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보기 힘들었고 면세점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 잠깐 앉아있으면서 본 면세점은 아예 손님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재난 영화의 시작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만 해도 3개월 비자에 맞춘 한시적 출국이었다. 어차피 비자 문제가 있으니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난 길이었다.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에게도 물론 잠깐 다녀오겠노라 안부만 전하고 떠났다.

떠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딸의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턴을 하고 말았다. 사귀던 남자 친구가 프러포즈를 해버린 것이다. 고민 끝에 딸은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거기다 최대한 빨리 결혼을 서두르겠다고 통보해 왔다.

독일식 결혼이라는 것이 우리처럼 복잡하고 번거롭지 않고 당사자들이 시청에 가서 서약하고 신고만 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계획에 없던 결혼을 그렇게 갑자기 하는 수도 있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딸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아무리 국제결혼이라지만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딸과의 영상통화 후 천 가지 생각에 만 가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 이성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가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 사귄 남자 친구였다. 그것도 낯선 나라의 청년이라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2년이 넘도록 잘 교제하는 듯했지만 제가 말하기에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결혼은 아직 먼 얘기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모든 일이 오래전부터 이미 계획된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외국생활을 꿈꾸었다. 성인이 되어 자립하면 유럽에서 살고 싶어 했고 만약 결혼을 한다면 그 또한 외국인과 하겠노라 말하곤 했었다. 그것도 콕 짚어 상대는 독일인이라고. 그렇더라도 결혼은 그야말로 아주 먼 훗날의 계획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국을 위해 사전 준비를 하는 딸을 지켜보면서 딸은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 되겠구나 생각했고 딸의 그런 꿈을 응원하기도 했었다. 거기에 결혼은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 정도였다.

팬더믹 초기 전 세계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독일에서도 유학생 부부가 집단 린치 당했다는 보도가 있던 날 딸과 그 뉴스를 같이 보았다. 곧 딸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 근심이 자꾸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딸의 앞길을 막을 수도 없는 일, 그때 잠깐 나는 속으로 차라리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던 것도 같다. 그곳에 가족이 생긴다면 우리 가족 대신 가까이서 딸아이를 보호해줄 테니 걱정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다. 잠시지만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막상 청혼을 받았다는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반대할 만한 명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하나가 얹어진 기분이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로부터 벌써 네 달이 지났다.

딸은 지금 독일에서 결혼을 준비 중이다. 우리의 결혼처럼 예식장을 예약하고, 예단을 준비하고, 살림살이를 보러 다니는 일반적인 결혼 준비는 단 하나도 없이 오직 국제커플이 준비해야 할 온갖 서류와 인터뷰만 준비 중이라고 했다. 우리의 신속한 행정과 달리 느려도 너무 느린 독일 공무원들의 일처리에 한 번씩 속 터져하면서도 차근차근 해내고 있다고 했다.

팬더믹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젊은 남녀의 마음에 결혼이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 언제 다시 국경이 닫힐지도 모르는 위태함이 이제 다시 헤어지기 싫은 젊은 남녀를 더 단단하게 붙들었던 것일까. 꿈쩍도 안 하던 여자 친구의 마음을 잡은 것이 반짝이는 프러포즈 반지가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지금 마냥 행복하고 달콤한 꿈에 빠져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누군들 계획한 대로만 살아지는 인생이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낯선 길에 들어설 일도, 모퉁이에서 가슴 철렁한 장애물이 툭 튀어나와 놀랄 일도, 넘어져 무르팍 깨지는 일도 겪을 수 있으니 마냥 자신할 일도 마냥 좌절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이쯤 살고 보니 인생길에 반드시 정답이 없다는 것도 알겠다. 모두 나쁘기만 한 것도 모두 좋기만 한 것도 아닌 것을 알겠다. 낯선 길을 탐색하고 장애물을 지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도 스스로 할 일이다.

딸이 계획했던 공부를 다 마치고 자신의 분야에서 깊이 뿌리내리길 바랐다. 그것만이 홀로 타국 생활을 하는 딸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그때까지 결혼이라는 형식은 그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결혼이 대안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회피의 다른 이름이고 의지박약의 나약한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모라는 입장에서만 딸을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었다. 오롯이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딸의 미래를 재단하고 계획하고 있었으니 딸의 선택에 괜스레 밤잠을 설치고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에 정리가 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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