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유감
나는 딸이 셋이다. ‘딸만 셋이다’라는 표현에는 왠지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재된 표현 같아서 싫어한다. 셋째를 임신하고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도 “아들 낳으려고?” 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낯 모르는 할머니가 내 손을 잡은 두 딸과 배를 번갈아 보고는 안 됐다는 듯이 “아들 낳아야지.”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 표정과 말투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셋째를 낳고 남편에게 꽃바구니를 선물 받자 같은 병실에 입원한 임산부의 시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셋째도 딸인데 꽃바구니를 준단 말 이유?” “아니 그럼 똑같이 해야지 셋째는 안 해주나요?” 그때 내 목소리는 분명 퉁명스럽고 거칠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어머니보다 왠지 그 며느리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나랑 같은 나이의 그녀는 조산기가 있어서 입원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내게 없는 아들에 대해 한 번도 아쉬워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한다.
아들이 없으니 당연히 아들 있는 엄마들이 해볼 수 있는 경험에 대해선 무지한 게 많다. 그건 딸 없는 엄마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나라 아들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훈련소가 그것이다. 호기심 탓도 있겠지만 나는 입영식과 훈련소 분위기가 몹시 궁금했다. 작년 여름 친하게 지내는 남편 친구네 아들의 입영식에 함께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그러고 싶다 했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줘 고맙다고 논산까지 가는 동안 커피를 사고 훈련소 앞에서 점심도 샀다. 아이는 신체조건상 공익 판정을 받아 4주 신병훈련을 받으면 나올 거지만 그래도 긴장되는지 밥을 먹지 못했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 궁금했던 연병장의 눈물 나는 입영식은 없었다. 훈련소 앞 주차장에서 잠시 머물다 들여보내고 돌아서 왔다. 그날 부부는 별 동요 없이 담담했다. 그 아들은 지금 중학교 행정실에서 공익근무 중이다.
오늘은 내 절친의 아들이 휴가 후 귀대하는 날이었다. 해도 짧은 12월, 귀대 시간은 하필 저녁 6시다. 귀대 시간 엄수는 늦을 경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 들어가고 싶다고-그러고 싶어 할 군인이 있을까만- 해도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눈에 이상이 좀 생겨 야간 운전이 서툰 친구가 며칠 전 도움을 요청해왔다.
이번에는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친구의 부탁이니 기꺼이 그러 마하고 보령으로 달렸다. 대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시간 맞춰 부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사병들을 데리고 온 차량 몇 대가 외부 주차장에 주차돼 있었지만 미리 내려있는 사병은 한 명도 없었다. 귀대 시간 5분 전쯤 되자 그때서야 한 명씩 하차를 하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돌아섰다. 친구는 아들이 있을 때 하지 못한 얘기를 하소연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거의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여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오래전 입대와 관련한 트라우마가 있다. 남편 친구 중에 아들만 셋인 집이 있다. 그중 큰 아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 말썽을 좀 많이 피워 부모의 애를 많이 태웠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곧 입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부동반 저녁 식사자리에서였다. 아직 어린데 걱정되겠다고 했더니 그 엄마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소리. 그놈에 자식 빨리 군대 가서 훈련 빡세게 받고 정신 좀 바짝 차려왔으면 좋겠구만.”
그 말에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래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어른 된다더라.”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엄마가 버럭 성질을 내며 말했다.
“지성이 엄마! 딸만 있다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욕먹어요. 나는 우리 아들 군대 보낼 거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 아파 죽겠구먼.”
그야말로 당황해서 대꾸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동안 그 부부 맘고생 심했으니 그 마음도 이해 가고 보편적으로 하는 인사도 그렇고 해서 한마디 보탠 것뿐인데 밥 먹다 말고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 엄마의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주변에서 누가 입대한다고 하면 용돈을 조금씩 주곤 했지만 나중에 그 아이가 입대할 때는 용돈도 주지 못했고 제대할 때까지 안부도 묻지 못했다. 그때 그렇게 역정 낸 것이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든 그 엄마에겐 곡해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때의 그 일이 있고 나서 군대 가는 아들 엄마 앞에선 특히 입단속을 하게 됐다. 맞장구 쳐주고 욕먹는 짓은 한 번이면 족했다.
지난여름 막내딸의 친구가 입대하게 됐을 때도 그랬다. 그 친구의 엄마에게 저녁 겸 위로주를 사고 아들에게 전해달라고 용돈을 건네면서도 아들 흉에는 일절 맞장구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만날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온갖 아들 흉을 보지만 어디 속까지 그럴까.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못나도 내 식구 흉은 나만 볼 수 있다는 게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호되게 당하고야 깨달았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은 헷갈리니까 엄마들이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나라 모든 군인 아들들이 건강하게 군 복무 마치고 그 엄마들에게 돌아오길 바란다. ‘웬수같은 아들’ 콘셉트는 같이 제대하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