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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un 27. 2022

의류수거함 속 아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

경찰관이 마주한 아동학대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하자마자 전일 접수된 신고 내역을 확인했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아동학대 신고 내역을 확인하면서 어제는 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고통받았는지 읽고, 상상하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간밤에 있었던 사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지푸리기도, 책상을 치며 분노하기도, 안타까운 피해자들 사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말 동안 접수된 신고는 많았다.

신고 내역을 확인하던 중 '신생아' '사망'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요동치며 나도 모르게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세젤이 맘) "의류수거함에서 신생아 발견?!!"

(직원) "네 주말에 관내에서 신생아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세젤이 맘) "아기를 버린 사람은 확인됐나요? 아이 엄마는요?"

"주변에 CCTV는 충분하다고 하던가요?"

"담당 형사는 몇 팀이죠?"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고 쏟아내는 질문에 아동학대 담당 직원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직원) "아이는 탯줄이 감긴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고요, 아이를 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지금 강력팀에서 수사 중에 있습니다 "


아... 눈시울이 붉어지고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랬던 일이 또 발생하고 말았다. 의류수거함에서 신생아가 발견됐고 탯줄도 그대로였다. 발견하자마자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했다.


11년 전 경찰관이 되었고, 그 다음에 엄마가 되었다.


경찰관이 된 후 내게 들어온 세상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어둠과 폭력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은 폭력과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술이 있었다. 돌, 칼, 골프채 같은 도구가 사람을 다치게 했으며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도시에서 하루에도 수백 건씩 112 신고가 접수됐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살고 싶을 때, 억울할 때, 화가 날 때 그리고 취했을 때 경찰관을 찾고 있었고, 현장에서 경찰관이 만나는 사람들은 슬픈 사람, 힘든 사람, 우는 사람, 억울한 사람, 분노하는 사람 그리고 취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중 어떤 사람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경찰관들을 만나게 되었고, 경찰관들은 의도치않게 생의 길에서 그들이 만나는 마지막 사람이 되기도 했다.  


경찰관이 되고 몇 년 뒤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난 뒤에는 특히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의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여기저기 찢기고 멍이 들어있는 아이들, 또래 아이들 몸무게의 반밖에 되지 않아 뼈가 드러난 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아이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단돈 몇천 원으로 편의점에서 수일째 끼니를 때우고 있는 아이들, 바퀴벌레가 나올 정도로 위생상태가 불결한 쓰레기집에 방치된 아이들을 발견하고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몇 번이고 눈을 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는 이미 사망했다. 우리는 또 막지 못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울어 보지도 못한 채, 숨도 쉬어보지 못한 채, 이름도 가져보지 못한 채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죽음으로 알리고 말았다.


아동학대가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014년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이 제정되었고 2021년에는 즉각 분리제도가 도입되었다. 경찰과 지자체,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개입 범위가 넓어지고 처벌도 강화되고 있지만 오늘도 이렇게 한 아이가 부모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신생아 사망사건은 아이가 사망한 채로 태어났는지, 살아서 태어났지만 어떤 다른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망한 것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죄명이 달라진다. 아이가 사망한 채로 태어났다면 유기한 사람은 사체유기죄(7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되지만 살아서 태어난 아이가 사망한 경우에는 유기치사죄, 영아살해죄(10년 이하의 징역)가 적용된다.


이번 사건처럼 태어나자마자 아기가 사망하는 경우 아기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기를 낳은 사람과 아기를 버린 사람뿐이다.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가해자들의 진술 외에는 사건 내용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고 목격자가 있는 경우도 드물다. 더구나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해자가 검거되지 않는다면 무연고 사망자 명단에 올라가고 말 것이다. 현실이 이런 탓에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수치는 더 많을 것이다.


신생아 살해 사건은 대부분 친부모에 의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경제적으로 키울 능력이 없어서, 수치심으로, 원치 않는 임신'이 대부분이다. 며칠 후 아이의 친모가 검거되었고, 아기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남편이 알까 봐'라고 진술했다. 원치 않는 임신 었다. 아이는 원치 않는 생명이 되어 세상에 나오자마자 처참하게 짓밟혔다.


아이 엄마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엄마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네.. 라며 한 부부가 아이를 낳아 정상적으로 기를 수 있는 제도나 구조적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이 사회, 국가 탓으로 책임을 돌릴만한 서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어떤 기가 막힌 서사가 이 아이의 생명과 바꿔질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

슬픔, 분노, 기쁨, 즐거움, 부끄러움, 연민, 좌절, 후회...


사람이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만큼 감정들도 같이 성숙되어야 하는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줄고 게임 속 가상세계와 같은 온라인 세계에 익숙해져 가면서 감정의 성숙과정이 많이 변화되고 있다. 이 사회는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에 중독되도록 더욱 부추기고, 우리는 도덕이 무엇인지, 윤리란 무엇인지 점점 망각하게 되면서 슬픔, 연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앞서야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만을 쫓게 되었다.


나 아닌 타인을 내 즐거움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려 결국 생명까지도 별거 아닌 걸로 다뤄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는 가해자의 90% 이상이 부모나 동거가족이며 피해자는 이제 막 태어난 영아부터 유치원생 등 어린아이들, 더한 경우 장애인, ADHD,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아이에게 절대적 존재인 부모의 학대 행위가 자신에게 위협적인 거라고, 그래서 벗어나야 하는 거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가가,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하고 개입해야 한다.


9살 큰애가 평소 잘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었다.

음정도 불안하고 가사도 정확하지 않았지만 5살 여동생에게 따라 부르라며 가르쳐주기도 했었던 노래라 엄마 귀에도 익숙해졌던 노래였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 모두 다 꽃이야> - 류형선-


하루에도 많은 아기들이 부모들의 축복을 받으며, 혹은 감추고 싶은 대상으로, 혹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하나의 꽃으로 피어 날 준비를 한다.


어디에서 어떤 꽃으로 피어 나든, 이제는 그 어떤 꽃도 함부로 사라지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피었던 꽃 한 송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이제는 다른 세상에서 맘껏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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