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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04. 2022

뿌리의 시절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또다시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나를 디자인할 키워드까지 만들어가면서 야무지고 구체적으로 새해 계획을 세웠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친구들에게 공개도 해가면서 나의 목표를 알렸고, 뭔가 대단한 변화를 꿈꿨었다.


일단 목표 점검부터 해보자면 반은 이뤘고, 반은 근처에도 못 간 것 같다. 새벽 독서를 꾸준히 했고, 독서모임도 잘 이끌어왔다. 브런치 작가가 됐고, 종이책, 전자책도 만들어봤다.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로 내공을 키우고 싶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확인을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마녀 체력 키우기는 완전 대실패다.


1년 성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올해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 2021년 목표를 세웠을 때도 반드시 다 이루리라는 기필은 없었다.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 마음, 계획이라도 세워보는 것, 성과와 목표를 글로써 구체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구체적인 목표들을 나열하고 보니 벌써 그 목표들이 눈앞에 와 있는 것 같은 설렘으로 의욕과 열정만은 최고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목표를 다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 보다도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그게 무엇일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되짚어봐야 했다.


내가 진짜로 원한 게 무엇이었을까

어디에 구멍이 가장 크게 뚫려 있었던 것일까


여기저기 살짝살짝 벌어진 틈새는 어느 정도 메꿔진 기분이지만 가장 큰 구멍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째 근본 없는 도전이고, 방향성 없이 목표만 거창하게 세워놓은 듯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삶을 꿈꿨다. 마흔이 훌쩍 넘어가는 나이에 두 번째 꿈이라는 거장 한 제목을 달아놓고 지평선 너머 붉은 해가 번쩍 솟아오르는 것처럼 나의 꿈 또한 그렇게 기세 등등할 것 같았다.


얼마 전 제9회 브런치 북 대상 프로젝트가 있었다.

현재 브런치 이용자 수는 4만 7천여 명이고, 브런치 북에 응모한 작품은 약 5900여 점이라고 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40여 개의 글과 매거진 2개가 고작이었다. 브런치 북은 한 권도 만들지 못했는데, 응모 작품이 4500여 점이라니,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니 기왕이면 잘 쓰고 싶었다.

글감이 생각나면 피아노 치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검은 활자들이 춤을 추게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감동적인 글, 감각적이고 유니크한 표현이 담긴 메시지, 센스 있고 리듬감 있는 문체, 중간중간 유머가 곁들여져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척척 써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쓰고 싶은 내용,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머릿속에 가득 차 빙빙 돌 뿐, 그 내용이 맘에 드는 문장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내고 개인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속내를 들춰내는 그런 글들이 좋았다. 가슴속 울림을 주고, 얼음을 내려쳐 깨트리는 도끼처럼 깊은 깨달음을 주는 글이 좋았다. 리듬감 있고 센스 있는 작가만의 필체는 너무 부러웠다. 그런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욕심이 앞섰다. 내로라할 작가들의 결과물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빨갛고 탐스러운 과실이었다. 나도 얼른 누구나 탐내는 그런 과실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 과실을 지탱하고 있는 줄기와 뿌리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과실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박성혁 작가의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에 모죽이라는 대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모죽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아무리 정성껏 돌봐줘도 5년 동안 싹 하나 돋아나지 않다가 5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느닷없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한다. 하루에 80센티미터씩 거침없이 자라고 30미터가 될 때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대나무가 혹시 푹 쓰러져버리지 않을까, 위태위태한 대나무 줄기를 걱정하던 사람들은 모죽의 뿌리를 파보았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죽의 뿌리는 사방팔방으로 얽히고 설켜 땅속 깊이 박혀 있었고, 그 길이가 무려 4000미터에 이르렀던 것이다.

모죽은 5년 동안 땅속에 갇혀 있었던 것만이 아니었다. 아래로,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치열하게 내공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결과 중심 사회에서 살아왔고 그게 성공이라고 배웠다. 대학 입시원서를 쓰고 취직 입사 원서를 넣으면서 나의 결과물들을 수능점수로, 토익 점수로, 자격증으로 원서의 빈칸을 채워 넣었었다. 그 점수를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격증은 어떤 이유로 취득했으며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등 그 점수와 자격증을 얻기까지의 과정, 공부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성과 만능, 결과 지향 사회에서 내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이것 보세요,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 라며 인정받는데 익숙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주기적으로 인정과 관심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했다. 성급하게, 조급하게 어떤 결과물을 바랐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 없이 나의 줄기가 단단하게 자라길 바랬고,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쭉쭉 뻗어나가길 바랬다.


나의 뿌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제야 뿌리를 내릴 땅을 찾았을 뿐이었다.

다시, 나의 뿌리를 제대로 다져야 한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분명 지루하고 고단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걸릴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 과정이 힘겹고, 이따금 한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쳐서 멈추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키우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뿌리 없는 줄기들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줄기는 생기 없이 흐릿할 뿐이다. 단단하고 깊게 내린 뿌리가 없다면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쉽게 부러지고 말 것이다.


지금 나는 뿌리의 시절을 기꺼이 겪어내야 한다.

어쩌면 나의 뿌리가 깊고 단단하게 박히게 될 때, 그때야 비로소 내가 키우고 싶었던 내공이라는 것을, 마음의 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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