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세젤이맘 Jan 06. 2023

고구마가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는?



" 안녕하세요!!"

" 응~ 어서 와~"

" 아이고 우리 막내~ 어서 와요"

" 일찍 왔네? 출근하느라 고생했네 어서 와~"


오전 9시. 사무실 막내 여직원이 출근하며 인사를 건네자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준다.


유난히 하이톤인 여직원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지고, 오늘도 사무실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 아침 안 드신 분들 고구마 좀 드세요, 지금 먹어야 해요, 아직 따뜻합니다"


5살, 3살 두 자매를 챙겨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왔을 텐데, 바쁜 와중에 사무실 동료들을 위해 간식을 챙겨 왔다.


고구마가 식지 않도록 은박지에 돌돌 말아 싸 온 20개 남짓한 호박고구마를 책상 위에 늘어놓는다.


" 아이고 제일 바쁜 아침에 무슨 고무마를 쩌왔어~~"

" 아니에요 에어프라이어에 그냥 돌리면 금방인데요 어서 와 드세요"

" 어? 저도 경주에서 보리빵 좀 사 왔습니다. 다 같이 드시죠"


경주로 휴가를 다녀온 남자직원 보리빵을 한 보따리 꺼내놓는다.


" 고구마엔 김치가 빠질 수가 없지~ 자자 김치도 같이 먹읍시다!!"


한달 전, 매해 300 포기 이상의 김장을 한다는 팀장님이 휴가까지 내고 시골로 김장을 다녀오시더니 배추김치 한통, 총각김치 한통을 싸서 사무실로 들고 오셨었다.


배추농사부터 300 포기를 소금에 절인 후 갖은 양념까지, 모든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길러서 버무린 김치 맛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은박지를 벗겨내자 아직 따끈따끈한 호박고구마가 먹음직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적당히 까맣게 타있는 껍질과 고구마가 분리되자 찐득한 윤기가 르는 샛노란 고구마가 자태를 드러냈다. 저절로 침이 고였다.





" 히~~~ 와~~ 진짜 너무 맛있다!!"

" 우와~~~ 살살 녹는다 녹아, 군고구마네 군고구마"

" 어떻게 한 거지? 에어프라이어에 한 거 아냐? 나는 이런 맛이 안나던데~~"

" 아~ 저도 아는 언니한테 들었는데 에어프라이어 온도만 잘 맞췄더니 진짜 군고구마처럼 되더라고요 너무 맛있죠?"


고구마는 뭐니 뭐니 해도 꿀 떨어지는 군고구마가 최 아닌가.


그러나 가정에서 군고구마를 해 먹기는 어렵다. 물에 삶거나 찌거나, 아니면 에어프라이기에 30분 정도 돌려 먹는 게 전부.


그런데 에어프라이에서 고구마를 군고마처럼 맛있게 익히는 황금온도가 있다고 했다.


" 아 그래? 어떻게 해야 하는데?"


", 160도 저온에 30분 돌리고 200도로 다시 30분 돌리면 돼요. 시간이 좀 걸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맛을 위해 그 정도는 기다려야죠. 아 이건 중간크기 기준이고 너무 작거나 너무 크다면 시간을 조절하면 됩니다 "


" 아~~ 와 나도 집에서 해봐야겠다~~"


고구마만 먹으면 1-2개밖에 못 먹었을 텐데 김치를 곁들이니 3-4개까지 거뜬해진다. 달콤한 고구마와 알싸한 김치의 조합은 진짜 최상이었다.


그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에어프라이기를 한 시간을 돌려 고구마를 만들어왔다.


고구마에 김치에 보리빵까지, 직원들은 아침부터 배를 든든히 채우며 하하 호호, 즐거워 보였다.  


아이 둘을 챙겨 출근하는 아침 시간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몸도 마음도 급해 감정조절도 잘 안되고 다급한 마음만 앞서는, '바쁜 나'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고구마 20개를, 한 시간을 돌려, 은박지 포장까지...


두 달 여직원이 저녁에 보낸 카톡이 생각났다.




엄마가 항암치료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혼자서 김장을 하신다고 해 급하게 휴가를 내고 도와드리러 다녀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카톡을 받은 순간,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차올라왔고 곧이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픈 몸으로 혼자 김장한다는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휴가를 내서라도 가서 돕겠다는 그 마음이 참 따뜻했다.


동시에, 힘들게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소금물에 절여진 배추더미를 옮기는 친정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려 눈물이 날 뻔했었다. 


결혼 후 일한다고,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김장 한번 돕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는데, 김장만 하고 나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곤 하셨는데.. '바쁜 나'만 생각 한 딸은 '힘든 엄마'를 외면했었다.

 

여직원이 간식을 챙겨 온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한 번은 고향인 부여에 밤막걸리가 유명하다며 몇 박스를 싸들고 와 2-3병씩 나눠주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우산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우 산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 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릅다게 만다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 김수환 추기경-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주는 사람, 

세상과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


그 여직원의 하루순간순간이 다채로운 색을 띠며 빛나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대충대충, 적당히 할 일만 하는, 겉치레로 모호하게 싸여있던 하루에 정성스럽게 색을 입히고 있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성을 다하는 마음은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도 예쁜 색을 입혀주었다.


그날 아침 사무실 직원들은 고구마의 달콤함보다  여직원의 따뜻한 마음을 더 진하게 느꼈을 것이다.


고구마 가장 맛있게 만들어지는 온도,

정성스럽게 160도 30분, 200도 30분을 돌리는 그 마음,

'나'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그 세심한 마음 덕분에 우리 마음의 온도도 1도 더 상승한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잘 먹고 잘 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