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브런치북에 <읍 사람의 이야기>를 연재하며 30회가 넘으면 2편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소재를 발견하면 제목을 정해 보기도 하고 사진도 폴더별로 정리해 두었다.
생각보다 빨리 주문진을 떠나게 되어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오늘은 <읍 사람의 이야기> 완결 편! 주문진에서 수집한 귀여운 순간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4월부터 5월까지 나는 신들린 듯 매일 <읍 사람의 이야기>를 연재했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오후에 일정이 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무조건 두 시간씩 글을 썼다. 처음에는 글만 썼는데 아무래도 주문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담다 보니 사진이 있으면 읽는 분들이 조금 더 공감하기 편할 것 같았다.
글과 관련된 풍경들을 수집하고 예쁘게 편집해 브런치북에 첨부했다. 맞춤법 검사까지 완료하고 나면 어떤 날은 세 시간 정도 품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항상 글을 발행하고 나면 뿌듯했다. 어깨가 조금 딱딱해져도 기지개를 켜면 우두둑 소리가 나도 '탈고'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날이 더워지기 전, 무엇보다 다리 다치기 전의 하루 본격적으로 '주문진 멋 사냥'을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마스다미리의 책 <귀여움 견문록>에서 영감을 받은 외출이었다. 이름하야 <주문진 귀여움 견문록>!!!
강릉이지만 강릉 시내와는 전혀 다른 항구도시 주문진. 어디서든 바다의 향기와 수산 냄새가 나는 주문진 특유의 정취를 담은 풍경들을 채집해 보았다.
'하아- 하아-'
정성껏 입김을 불어 핸드폰 카메라를 닦았다. 행여 지문이 묻을세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집 앞 횡단보도 앞 모퉁이를 돌아드니 고양이 한 마리가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주문진은 어시장을 끼고 있는 곳이라 어디 가나 고양이들이 많다. 우리 집 주차장에도 가족으로 보이는 검은색에 흰색 장화를 신은 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다. 길냥이와 반갑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주문진 항으로 향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주문진 우체국'은 등대 모양이 정겨웠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 지인들에게 카드를 보내곤 하는데, 올해는 여기서 보내면 되겠구나 싶어 찬찬히 둘러보며 눈도장을 찍었다.
'주문진 축구단'이라는 간판 아래 '60대 이상'이라는 글자는 나도 모르게 "ㅋㅋㅋ" 소리를 내며 귀여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주문진 방파제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눈이 마주친 대게 모형은 하도 귀여워 나만 보긴 아쉬웠고, 사람들이 하늘 한 번 보다가 꼭 봐주었으면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항구 곳곳에는 그날 잡은 수산물을 말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도 보였다. 속초에 살 때도 장사항 골목길에 들어서면 생선을 널어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파트, 주택 할 것 없이 베란다 밖으로도 생선건조망을 걸어둔 모습을 보고 해와 바람에 생선이 더 맛있어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주문진의 하루는 아주 일찍 시작되는 편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창밖을 봐도 벌써 운동 나온 어르신들, 간밤에 빼곡하던 지상 주차장의 차들도 벌써 몇 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의 출근길에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들 때면 공공근로를 나가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 찬찬한 걸음으로 어떤 분들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부지런히 쓰레기를 주우셨다. 더운 날 일을 마치고 그늘 아래 모여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감사하기도 하고, 외람되지만 참새처럼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는 모습에 귀여움을 느끼기도 했다.
주문진의 시간은 아주 여유롭고 한가로이 흐르지만 그 안에도 질서는 존재했고, 보이지 않는 노고들이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돌아가는 주문진의 하루.
평균 연령이 55세에 가까운 도시답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속초로 올라가는 7번 국도를 제외하고 나면 주문진은 도로가 넓은 편이 아니어서 (갓길 주정차도 많고, 수산시장 도로 쪽은 늘 붐비는 편이다.) 이륜차가 등장하면 뒤 따라오는 차들은 반드시 서행을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에 만난 '제일 안전' 간판을 달고 달리던 세 발 자전거 덕분에 한참을 서행했지만, 부지런히 페달을 돌리던 어르신의 에너지에 박수를 보낸 것도 사실이었다.
숲에서 찍은 사진은 이곳에 살며 제일 자주 갔던 곳인 '강원도립대 솔밭길'이다. 흙이 곱고 부드러워 맨발 걷기를 열심히 했는데, 항상 누군가가 깨끗이 쓸어 놓은 빗자루질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남편을 회사에 내려주고 아침 일찍 솔밭으로 향한다. 혹여 다칠까 굵은 돌멩이, 뾰족한 나뭇가지나 유리조각 등 운동에 방해될 수 있는 것들을 사각사각 비질로 없앤 흔적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매일 한결같이 깨끗한 공간을 더 깨끗하게 만들어 놓은 분의 선의 덕분에 고마움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이따금 바다 위로 무지개가 뜬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고, 주말마다 주문진 유람선에서 쏘아 올린 폭죽으로 불꽃놀이도 보았다.
매일 설거지를 할 때면 대관령 언덕에 걸린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과 오밀조밀 자리 잡은 마을을 보며 운치를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서울, 속초, 춘천, 세종. 전에 내가 살았던 도시보다 주문진에서의 생활에 긴 적응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읍 사람의 이야기> 1편부터 본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몇 가지 크고 작은 일들로 나는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근 채 마음앓이를 해야 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생선 굽는 냄새가 나서, '철둑길'이라는 도로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샤워하기 적당한 물 온도가 안 맞아서, 수건 넣는 수납함이 좁아서, 싱크대 높이가 낮아서, 지하 주차장이 그림의 떡이어서... 온갖 이유들이 모두 불만이 되었다.
매일 투덜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싫어 더 많이 자주 자연 속에 머물고자 노력했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책을 찾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기도하는 마음을 되살리고 싶어 피정에도 다녀왔다.
집에서 날아들던 소리 때문에 고요 속에 있는 순간이 오면 쉽게 감동에 젖었고, 혼자 늦게까지 있을 때에도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동안 만났던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절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 클래식이나 연주곡 위주의 음반을 즐겨 듣게 된 것도 이곳에 와서 달라진 취향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많았던 덕분이다. 바다와 장례식장이 함께 보이는 곳에 살면서 '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매일 되새김질 되었다. 하지만 장례식이 없는 날이면 기분이 한결 가벼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집을 선택했던 이유. 주문진으로 들어왔던 이유. 바다가 잘 보이는 집. 그 바다!
바다는 늘 같았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정지된 것 같고 똑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지만 지난 육 개월간 내가 본 바다는 매번 새로웠고 초연했다. 그리고 항상 거기 있었다. 다가오지 않고 멀어지지도 않았으며 눈을 들면 제자리에 있었다. 어떤 날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어디론가 떠날 때면 노래 하나를 골라 여행 내내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자연스레 여행에서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이곳 주문진의 삶은 어떤 노래로 기억될까?
가만히 턱을 괴고 생각해 보니 슬로 조깅하며 매일 들었던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 내려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come on!"
하면서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지경해변에서 뛰던 사람 중에 오사카의 명물 글리코상처럼 불시에 만세를 부르던 사람을 보았다면 바로 나다. 추임새로 나오는 '컴 온'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손이 저절로 올라갔다.
그런 추억들로 주문진은 기억될 것 같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해 서운함 한 스푼을 남기고 브런치북 <읍 사람의 이야기> 연재를 마친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성 어린 댓글 달아주신 독자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고요한 하늘색 바다 앞에 조금 더 머물러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