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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사람의 기도

감사 기도 드릴 때

by 윤슬log


유월로 접어들면서 동향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무더위와 함께 시작되었다.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인데, 아침 여덟 시에도 거실 온도계는 2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출은 매일 볼 수 있다더니 해는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매일 우리 집 깊숙이 더위를 몰고 왔다.


높은 건물 없이 툭 트인 전망에 작열하는 태양을 막아줄 무언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햇살이 따가운 오전 시간에는 집을 피해있는 게 동향집 주인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였다. 어느 날은 해변에서 슬로 조깅으로, 어느 날은 명주 도서관으로 또 어떤 날은 소나무숲으로 피서를 갔다. 이 생활에 적응을 할 때 즈음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슬로 조깅'을 예찬하는 글도 썼다. 주문진에서의 나의 생활은 바다 어씽, 솔숲 걷기, 천천히 뛰기... 등 글 쓰는 시간을 외에는 자연을 즐기는 활동이 많았다. 적당히 나만의 일과를 만들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데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다리는 다쳤지만 자생식물원에서 찍은 사진은 남아...



대통령 선거날이 있던 그날은 오랜만에 남편과 속초로 나들이를 간 날이었다. 양양에 들러 능이버섯이 듬뿍 들어간 백숙을 먹고, 기분 좋게 배를 두드리며 '설악산 자생식물원'으로 향했다. 속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기도 했고, 이맘때 가면 예쁜 작약꽃을 보고 싶었다.


익숙한 정취에 신이나 남편에게 재잘거리며 걷다가 왼쪽 발을 또 접질려 버렸다. 긴 나무데크가 끝나고 한 발작 내려오면 야자매트가 깔린 바닥으로 닿는 지점이었는데, '우두둑' 소리와 함께 발목이 반원형으로 꺾인 것이다.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미동도 할 수가 없었다. 2년 전에 발등과 복숭아뼈 쪽이 골절됐던 발이라 정형외과, 한의원을 번갈아 다니며 치료했고 작년 내내 재활 운동에 열을 올렸었는데 역시나 약한 부분이 탈이었다.


인대 파열과 근육 손상으로 반깁스를 후 나의 모든 바깥 활동들은 옛날 일이 되었다. 편치 않은 집을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바다로, 들로, 산으로, 호수로 나아가 크게 숨 쉬고 부지런히 걷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발을 다쳐 꼼짝없이 메인 몸이 돼버렸다.

발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걷지 않을 수 없기에 더디 낫는 부위 중 하나다. 누구보다 혹독하게 고생해 본 나로서는 그 과정을 다시 할 생각을 하니 속상해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뭐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마음 다잡고 열심히 지내고 있었는데, 운동하러 나가는 기쁨마저 앗아가는가 싶어 속상했다. 어떤 기도의 말도 나오지 않았고 감사기도는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2월에 내놓은 집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라 이런저런 이유로 7월이 되기 전에 이사하지 못하면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핸드폰이 울렸다. 몇 년 전에 참여한 적 있었던 '예수회센터'에서 피정 안내 문자가 온 것이다. 몇 달 전부터 개인 성화를 위한 피정을 찾고 있었는데 애타게 찾던 정보가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피정'이란,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을 말한다. 불교로 치면 '템플 스테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모든 일을 차치하고 바로 피정을 신청했다. 당장 내일모레였다. 부랴부랴 짐 가방을 싸고 서울로 향했다. 8년 전에 했던 프로그램이라 나의 발목 상태에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저 다른 목적 없이 기도나 묵상만 열심히 하고 올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서강대 예수회센터는 대학가 특유의 활력이 넘쳤고 신부님의 강의 또한 좋았다. 하루 한 번씩 미사를 드리고, 오랫동안 손 놓고 있던 묵주기도도 다시 시작했다. 신부님과의 면담에서는 내가 담아왔던 하느님과 신앙에 대한 질문과 속상함, 원망, 회의감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해 볼 수 있었다.


무엇이든 청할 것, 아주 작은 마음속 말씀도 그분께 말씀드릴 것. 어렵고 힘든 감정들도 하느님께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했기 때문에 충분히 조화로우므로 자존감, 자신감이 떨어지고 쪼그라들 때에도 그분께서 우리를 완벽하게 만드셨음을 잊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피정을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신부님과 면담을 하고 나오니 남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실시간 대화창에 남겨진 남편의 메시지를 보고 나는 내 볼을 꼬집어 봐야 했다.

"여보 우리 집 나갈 것 같아요. 전화 주세요."

'오잉???'

남편과 통화 후 나는 이게 정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여태까지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없었는데, 다다음주까지 안 나가면 그냥 사는 걸로 마음 잡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사 가는 건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기까지 오게 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다음날 신부님과의 면담 시간에 나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느님이 역사하셨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나 역시 이런 표현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신은 마음속에 있는 거지 정말 현실에서 이렇게까지 능력을 드러내 보이실 줄이야.

시기도 완벽하게 이런 일을 가능케 하실 분이라면 내 인생 최고의 난코스인 '암'도 반드시, 끝끝내, 기어코 낫게 하시리라는 믿음이 마구 샘솟았다.




그리고 피정에서 나온 다음날 정말 우리 집이 나갔다. 2월부터 지금까지 매기가 1도 없었는데 다다음주가 마지노선이었는데 말이다. 이사 갈 집도 바로 구해졌다. 전에 관사로 쓰던 곳이라 집주인이 입주 청소도 다 해둔 상태였고 원하는 날짜에 맞춰 갈 수도 있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진행돼 얼떨떨하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한의원에서 발목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문진 성당에 들렸다. 부활절 이후 오랜만에 온 것이었다. 푹푹 찌는 날이어서 그늘을 찾아 성당 뒤편 주차장까지 올라가 차를 세우니 처음 보는 장소가 나타났다. '말씀 정원'처럼 성경 말씀을 돌에 새긴 공간이었다. 나는 찬찬히 말씀을 읽으며 묵상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에 생기를 얻게 해 주십시오.]

위 두 말씀에서는 얼마 전 <생기를 찾아서>라는 글에 썼듯 내 마음에 생기가 없던 때가 떠올랐다.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고 생각하기에 달렸는데, 주님께서 아무리 웃음과 생기를 가져다주셔도 본인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든 감사하십시오.]

라는 구절에서는 불안하고 걱정 많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상황은 선택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막상 현실에서 적용은 어렵기만 했다. 그분을 온전히 믿지 못했고, 의심했고, 자주 분노했으며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던 마음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도의 말도 나오지 않아 피정을 신청한 것이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좋아해서 필사까지 한 코헬렛의 말씀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천주교는 구복신앙이 아니다'라는 예전 레지오 단장님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 가끔 기도를 하다가도 "~ 하게 해 주세요. ~주세요."라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뭔가 그렇게 기도하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이번 피정을 통해 나의 고민을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왜 그렇게 기도하면 안 되냐며 성경에도 "청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결릴 것이다. (루가복음 11:10)"라고 나와있다고 말씀해 주셨셨다. 물론 익히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었지만 그냥 매번 "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모습이 왠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내 기도는 대충하고 다른 사람 기도로 넘어간 적도 많았다.





여러 가지 상황의 극적 타결로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나는 말씀 정원을 둘러보고 십자가 앞에 앉아 감사 기도를 드렸다. 묵주기도를 할 때도 청원기도를 바치고 나면 꼭 같은 날 수만큼 감사기도를 드리게 돼있다.

인생은 계속되고 나는 고작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이라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감사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십자가 아래에는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셨던 말이었다. 나는 하느님께 나의 모든 마음과 기도를 털어놓았다. 일말의 거짓 없이 복잡한 감정도, 불편한 감정도, 감사의 마음도, 티끌 한 점 남기지 않고 모두 말씀드렸다.

전에는 "아버지!" 하고만 불러도 다 아시는 그분이라 많은 말들을 생략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청하고 두드리고 찾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제 뜻이 아닌 아버지 뜻대로"라는 말로 기도를 마쳤다.

성당 뒷마당에 핀 왜철쭉과 석류꽃, 섬초롱이 기도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리쬐는 더위에 정수리는 따가웠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사실 주문진 성당은 10년 전 항암치료를 하며 강원도 여행을 왔을 때 들른 곳이기도 했다.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 인사하며

"신부님, 아녜스가 많이 아파요."

하며 기도를 부탁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면 신부님께서는 머리 위에 두 손을 정성껏 모으시고 안수 기도를 해주셨다.


여행지로 왔던 그곳에 와서 나는 살고 있다. 우당탕당 요절복통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여전히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삶이지만, 지금 당장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 다는 사실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이곳에 이사 온 후 한동안 잊고 지내던 감사를 되찾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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