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학> 2021년 봄호. 완료 추천
집안이 조용하다. 불현듯 도르르르 굴러가는 피아노 소리에 손이 먼저 멈췄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니 해는 이미 머리 위를 넘어가고 있고 시간은 오후 3시. 어김없이 3시가 되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적막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은 큰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라니!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다른 소음은 다 차단하더라도 음악만큼은 옆으로 전달 또 전달해주었으면 싶었다.
세상이 시끄럽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었고 외식, 여행, 장보기, 종교 활동, 각종 모임과 만남은 가능한 한 지양하고 있다.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은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로 변해갔고, 체념하고 내려놓는 과도기가 온 것 같다.
감염병이 확산되면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음악회’ 같은 문화예술 공연이었다. 언택트 콘서트와 방구석 음악회가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어디 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따라갈 수 있으랴.
그러던 찰나 그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학교가 파한 후 피아노 앞에 앉은 학생인지, 나처럼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성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락없이 시계가 3시를 가리키면 음악이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것을 인지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이라는 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모르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긴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겠다. 무신경에서 신경이 쓰이는 정도로 돌아선 것은 피아노 화음이 티비 소리에 섞이면서 부터다.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도, 감정이 고조된 드라마 장면에서도, 피아노 선율은 아랑곳 않고 은근하게 때론 아주 강렬한 두드림으로 귀를 간지럽혔다. 달콤한 오수(午睡)의 시간에는 둥당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익살스러운 방해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의 음악회는 나의 생활 속으로 조금씩 녹아들었다. 일정한 시간에 누군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조금 더 소리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쇼팽의 <이별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멋들어지게 치다가도 중간중간 <떴다 떴다 비행기>, <젓가락 행진곡>을 삽입하는 센스라니. 일반 클래식 공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요, 선곡이었기에 지루함 없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하루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보았다. 귀로만 듣던 소리들에 생동감이 더해지더니 이내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정통 클래식 음률은 아주 유려하게 흘러갔지만 중간에 들리는 짧은 동요를 연주할 땐 장난스러운 연주자의 표정이 그려졌다. 연주라기보다 두드림에 가까웠기에 조금은 둔탁한, 이를테면 고양이가 꾹꾹이를 할 때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음악소리에 맞춰 흥얼거리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띠딩’ 하고 잘못된 음을 누르거나 아무 음이나 ‘우당탕탕’ 마구 쳐버리는 순간도 있었다. 피아노 건반 여러 개를 동시에 눌러 음을 마구 뭉개는 작은 일탈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럴 땐 쉼 없이 이어진 공연에 뾰로통해진 연주자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연주하는 곡에 따라 때로는 개구쟁이 아이처럼, 때로는 슬픔 가득한 비운의 음악가로 변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그날은 유독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만 채워진 날이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소리가 다소 멀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느새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감상에 젖어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모차르트와 바흐의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가사가 있는 팝송, 가요 등의 유행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바로 이 악기 연주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녹아있는 구수한 트로트, 슬픈 사랑 노래에 안성맞춤인 발라드,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힙합. 주제와 철학이 뚜렷한 가사말로 전달되는 대중음악과 달리 클래식 연주곡들은 정해진 가사가 없어 더 많은 사색이 가능하다. 나도 이 시간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돋우며 오후 일과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음이 고요하다. 조용한 집이 온종일 적요 속에 머물 때에도, 피아노 선율로 풍성하게 채워질 때에도, 마음은 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세상이 유난히 시끄러웠던 한 해였기에 나의 보금자리가 한결 포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작은 행복을 선물해 준 오후 3시의 음악회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는 마치 샘이 깊은 물을 길어내는 듯 청명한 음악을 계속해서 퍼올렸으며,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졌다.
우리 집 위층에는 놀라운 피아니스트가 산다. 그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으나, 나는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이 고운 소리가 오래오래 들려오길 희망할 것이다.
-2021년 봄. 계간 <에세이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