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12 (수)
내일이 수능이란다.
언제부턴가 무려 '(大)수능'에 둔감해진 마음. 엄마 친구 아들도 수능 볼 나이가 지났고, 재수 삼수 그렇다고 동생이 수능 볼 나이도 아니니. 그 대단한 시험에서 마음이 멀어진 지 오래였다. 요즘은 '수능 한파' 이런 말로 더 익숙한데, 그나마도 올해는 날씨가 춥지 않다고 하니 이제 곧 '수능 한파'라는 말도 옛말이 되겠다.
한 때는 전부였던 수능을 까맣게 잊고도 잘 사는 나이가 되었다. 즐겨 듣는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쓰는데, 어김없이 내일 있을 시험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이 아마 예비소집일 인가보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관문이라는 그 시험. 중요하긴 하지만 조금 못 봤다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세상이 망하지는 않으니 그저 담대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지난달 강릉은 거의 내내 비였다. 남편에게 차를 맡기고 나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바닷가로 운동을 다녔다. 아침저녁 라이딩 하는 게 체력적으로 엄청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 진짜 바람 불고 추워지니 일찍 집을 나서는 것도, 칠흑같이 캄캄한 겨울밤을 헤치고 데리러 가는 것도 전보다 조금 더 수고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강릉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차가 없으면 기동성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장보기는 온라인으로, 성당은 차 있는 날, 마침 명상수업도 모두 끝난 상태라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내려놓으니 이렇게나 편한 걸. 그런데 11월이 되면서 해가 나고, 노랗고 붉게 옷을 갈아입은 단풍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다시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오늘은 사천천과 신리천 둑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를 나의 오른쪽 옆에 두고, 대관령 신령한 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보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뚝방길이 좋을까. 신작로와 대로보다는 어쩐지 이런 소로(小路)들이 더 운치 있고, 정겨워 보이다.
꼭 동요를 불러도 될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사천천 위로 연곡천과 주문진으로 내려오는 신리천이 흐른다. 항상 차가 다니는 길로만 지나다니니까 고개를 길게 빼고 '저리로 난 길들을 꼭 걸어보리라.' 싶었는데, 다음 주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니 오늘이 적기겠다.
엊그제는 장덕리 은행나무를 보러 갈 생각으로 남편을 데려다주었는데, 학교 교정에서 매일 솔잎과 단풍을 치우는 아저씨가 계셔서 따뜻한 꿀물을 사다 드렸다. 한 여름에 진짜 더운 날도 아침 8시부터 몇 시간 동안 대학교 안에 있는 떨어진 솔잎과 낙엽들을 무거운 모터 달린 기계를 들고 춤추듯이 치우신다. 차가 오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쳐도 경쾌한 스텝에 맞춰서 즐기면서 그 일을 하시는 게 느껴진다.
그분 일하는 것보고 너무 감동받은 터라 오랜만에 학교 간 김에 봬서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따뜻한 음료를 사다 드렸다. 나 또 파워 E라 혹시 조금 스몰 토크 하게 되면 "여름에도 지나다니면서 뵀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작업 중이시고 기계 엔진 소리가 너무 커서 그냥 "감사하다."고만 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빛이 난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주부의 하루도 몹시 바쁘고 분주하다. 살림을 깔끔하게 하는 것, 매일 갓 지은 음식들로 상을 차려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는 어떻게 이걸 40년을 했지? 아빠는 어떻게 회사를 37년 다니셨고? 새삼 부모님들이 슈퍼 히어로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모양처' 다음가는 나의 꿈은 '수필가'
막상 출간기획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멈춘 상태였는데, 지난주 국립발레단 <지젤> 공연을 보다가 번뜩!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출판관련된 유료 강의도 들었었는데, 요즘은 한글 파일로 된 출간기획서 보다 PPT로 만들면 좋다고 해서... (난 대학교 때도 조 모임 할 때 보고서 담당을 자처했는데, 다시 PPT라니. 껄껄껄) 고민하다가, 공연 2막이 시작되고 유령 신부들이 나와 똑같은 동작을 하며 춤을 추는 구간이 반복되자 약간 마법에 빠지는 듯 뭐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미지가 떠올랐다.
남편에게 공유하니 좋은 생각 같다고 칭찬해 줬다. 무무는 정말이지 언제나 내 편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 <명경지수>에 가서 아이디어들 정리하고, 대충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획을 짰다. 부디 크리스마스 전에는 내가 이 계획을 실행하길. 미래의 나야, 잘하자.
일단 이번 주는 가을을 좀 즐기고!
강릉에 살면 자연이 좋아서 운동할 수 있는 옵션이 많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호수로. 그래서 실내 운동보다는 실외 운동을 권한다. 물론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져서 나도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런 정도의 고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대책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수능은 모르지만, 시험에서 멀어진 삶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삶을 알아가는 중이다. 인생 공부는 정말 한이 없다.
읽어주시는 분들, 가끔 답글 달아주시는 작가님들, 하트 눌러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