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이제 고작 태어난 지 32개월을 지나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저는 가끔 아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안의 감정들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삶에서 진즉에 마주했어야 하는 감정들이었을 텐데
세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어른스럽게 저를 어두운 동굴에서 꺼내어 줍니다.
딸아이를 품에 안으면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안아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와 눈을 마주할 때면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따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위로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갈수록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슬픔으로부터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머니는 손녀가 태어난 이후로 고된 삶을 더 열심히 살아내십니다.
이제껏 찾지 못했던 삶의 이유를 예순이 넘으신 나이에 찾기라도 하신 듯 말입니다.
당신의 고된 삶에 차가운 아들이 부담이라도 지어준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신호 대기 중에 아내가 보내준 동영상을 보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동영상 속 손녀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어머니의 환한 표정이 어린 시절 제가 그렇게 좋아했던 엄마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어머니의 지극한 손녀 사랑이 오랜 시간을 거슬러 그 옛날 자신의 어린 아들을 향한 사랑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삶은 어린 제가 보아도 참 버거워 보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다는 연민으로 시작된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그 시절 두 분의 이별의 걸림돌인 것만 같았습니다.
분명 저를 사랑하셨지만 온전하지 못한 사랑은 저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어떤 결핍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지금의 저는 그저 어머니에게 쌀쌀맞은 아들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차를 돌려 엄마에게 향했습니다.
깜깜한 골목길에 어색하게 마중 나오신 엄마를 안으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작고 어린 아들과 젊은 시절의 엄마는 비로소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사랑은 정말 위대한 것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를 혼자 두고 집을 나서던 엄마가 아닌,
나를 찾아 늘 다시 돌아오셨던 엄마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말입니다.
새벽 차가운 공기가 꽤 기분 좋은 요즘입니다.
더 차가워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따뜻한 마음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부디 모두 사랑이 가득한 겨울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