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수진 Oct 03. 2021

내 생각은 달라

볼 빨간 삐딱이


 “내 생각은 달라.”


 어린 시절 오류와 모순이 뒤섞인 어른들의 규칙이 싫었다. 생각의 기준에 맞는 어른의 지시는 따랐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유교적 테두리 안에 나를 가두려 하면 어김없이 삐뚤어졌다. 친구들과 다른 무언가는 내 앞에 ‘삐딱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했다. 삐딱한 언행을 표현하자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했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삐딱한 생각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어느 정도 마음이 해소되었다. 지루성 피부염으로 빨간색의 얼굴인 삐딱이는 그림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2020년, 그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즐거움은 만족감을 주었다. 그림에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같은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찰력이 필요했다. 그림자의 명암 차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변화, 사람들의 걸음걸이, 비가 온 뒤 거리에 비치는 건물의 모습 등을 자세히 관찰했다. 왜 명암 차이가 생기는지, 왜 연령대별 걸음걸이가 다른지, 왜 멀리 있는 사물이 작게 보이는지, 왜 물이 고여 있는 곳의 그림자가 흐리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삐딱이의 성향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전보다 깊어진 생각은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차가운 머리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고, 따뜻한 마음은 그림을 보는 관람객에게 전해질 무언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림에 담긴 마음을 글로 표현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주었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된다. 쌓인 글을 통해 현재를 점검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높아진 메타인지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려 하자 과거에 대한 후회가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지나친 후회로 인해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나기 일쑤였다. 현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림과 글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지루함, 세 아이로 인해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여 겪는 두려움과 걱정,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 그리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애매한 그림과 글이지만 완성하기 위해 견뎠던 시간과 노력 때문이었다. 몰입의 결과 쌓인 그림과 글은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과 글이 물질적 풍요를 주지는 못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준다. 정신적 풍요. 환경의 변화는 없지만, 마음의 변화가 있다. 기쁨, 황홀함, 고통, 불안, 분노, 미움,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이전보다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느껴진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과거보다 더 나은 지금을 만들 수 있는 내적 힘을 소유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잘 그린 것도 그렇다고 못 그린 것도 아닌 애매한 그림이면 어떠한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작은 결과물들이 잘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조금씩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느껴지는 감정이나 환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관한 생각을 적어보자.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길의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당신의 내일을 응원한다.



볼빨간 삐딱이 ⓒ 방수진












작가의 이전글 냉정한 악어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