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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혁 delivan Feb 10. 2020

내 미래는 가슴이 아닌 머리가 결정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나는 래퍼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MP3를 달고 다니고 노래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힙합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전공과 관련이 없음에도 기타, 피아노, 미디 학원까지 섭렵하며 래퍼를 넘어 여러 악기로 작곡까지 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꿈꿨다. 


롤 모델이었던 다이나믹 듀오 형님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나는 결국 개발자가 되었다. 응..?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나를 개발자로 만든 것

열정을 가지고 있던 음악과 거리가 먼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첫 번째로 음악에 대한 열정에 기름을 붓고자 하는 용기가 부족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게 되는 경험을 할까 봐 선뜻 무대 위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만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특이하게도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알고 있겠지만 군대에선 정말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초나 불침번을 설 때면 나 자신에게 여러 질문들을 수도 없이 던지고 답하길 반복했다. 그때 했던 질답 중 몇몇은 다음과 같다.


Q.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일을 더 잘하는가?

A. 랩은 잘하는 편에 속한 것 같지만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드는 거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개발은 학교에서 꽤 잘하는 편에 속한다.(취직을 하고 나서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여실히 깨닫긴 했다)


Q. 내 주변 환경과 가지고 있는 자원들로 볼 때 어떤 게 더 효율적인가? 

A. 전공이 컴퓨터 공학이고 관련하여 멘토도 많았기 때문에 개발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Q. 어떤 게 더 전망과 확장성이 좋은가?

A. 음악은 듣는 사람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만드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다. 반면 개발자는 없어서 못 구하는 상황이고 회사가 계속 생기면서 일자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전망이 좋고, 어느 직무에서나 개발 실력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확장성도 더 좋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음악으로 당장 돈을 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돈을 어느 정도 번다면 취미로든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먼저 당장 내가 할 수 있고 전망이 좋은 것에 집중하자.' 그렇게 전역 후에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잠시 접고 개발 공부에 전념해서 졸업하자마자 개발자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진로는 신중하게 선택해라

가끔은 내가 계속 래퍼가 되려고 더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과거에 음악에 대한 열정을 열렬히 지지해주던 사람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지금의 상황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만약 그런 지지를 발판 삼아 열정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일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왜 열정을 따르면 안 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윌리엄 맥어스킬


첫 번째로는 대다수 사람들이 열정을 보이는 분야가 직업 세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캐나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열정을 쏟는 분야가 있다고 답한 84퍼센트의 학생 중 90퍼센트가 스포츠, 음악,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와 관련된 일자리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거기다가 성공하는 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두 번째로는 관심사, 즉 열정의 대상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심리학자 조르디 쿠아드박, 대니얼 길버트, 티모시 윌슨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생각보다 훨씬 자주 변하며, 따라서 관심사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열정은 금방 식기 마련이라는 것과 다른 분야에서 불타오르기도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심사와 무관한 일을 시작해도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열정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온다고 강조한다.

 

냉정 후에 열정 온다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서 열정을 따르라는 말을 한 스티브 잡스도 처음부터 기술 분야에 열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잡스는 젊었을 때 선불교에 열성적이어서 삭발을 하고 법복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승려가 되려고 일본행을 진지하게 고민을 한적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도 기술에 능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친구가 되면서 기술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고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들의 사업이 관심을 끌고 성공을 거둔 뒤부터다. 즉, 냉정한 판단으로 인한 행동이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서 열정이 자연스레 뒤따라 온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나는 현재 개발 일만 하고 있지는 않다. 서비스의 매출 성장을 위한 팀의 리드를 맡게 되어 개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마케팅, UX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퍼포먼스를 내며 내 가치와 영향력을 올리고 있다. 아직 1달 정도밖에 안됐지만 주변 사람들과 동료분들이 나를 이전보다 더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 덕분에 일을 만족스럽게 하고 있고, 나아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다. 새로운 열정이 온 것이다.


군대에서 했던 고민들을 좀 더 확장시키고 보다 미래 지향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지속적으로 생각한 덕분이다. 진로는 절대 한 번에 결정할 수 없다. 언제든 새로운 대안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현재의 상황과 충분히 비교를 해봐야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열정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 또다시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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