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일기를 쓸 줄은 몰랐다

일기

by 벨리따

커서도 일기를 써야 하는 줄 몰랐습니다. 저한테 일기는 방학 숙제였어요. 그날 있었던 일을 적고 감정을 적습니다. 좋았다, 즐거웠다, 속상했다, 슬펐다처럼요. 일기를 써서 내 삶이 좋아지고 달라진 건 없었어요. 그러니 다시 일기를 적기 전까지 써봐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먼저, 몰아서 썼습니다. 즉,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개학 하루 이틀 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빨리 적고 넘어가야 합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 달 전의 일이니 생각나지도 않았고요. 기껏해야 여름휴가를 갔거나 학원에서 놀러 간 적은 대충 기억에 나서 좀 더 길게 적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적었으니 일기를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또, 안 좋은 일보다는 좋은 내용 위주로 담았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보니까요. 혼나고, 거짓말하고, 오빠와 때리고 싸우고, 친구에게 삐진 이야기는 뺐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매일 좋고, 기쁘고, 즐거운 날인 거 같아 일부러 속상한 일 적을 때도 있거든요. 제가 오빠한테 먼저 장난쳐서 싸우게 되었고, 그러다 맞고, 엄마한테 이르면 둘 다 혼나더라도 제 잘못을 뺍니다. '오빠와 싸우다 엄마한테 혼났다'라는 정도로만 적어요.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던 것이죠.

일기 쓰는 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한꺼번에 쓰고, 쓰더라도 보여주고 싶은 내용으로만 채우고, 잘못한 건 반성하지 않았으니 그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최소 25년은 일기를 쓰지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매일 적습니다. 일기 쓰기를 들은 건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였습니다. 추천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시간 낭비, 팔만 아프고 이런 부정적인 반응부터 나왔습니다. 제 경험이 어렸을 때 쓴 일기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글 쓰는 연습을 해야 하니 강의 내용에서 골라봅니다. 글쓰기 전에 메모부터 하기, 구성에 맞춰 글 써보기, 문장은 짧게 쓰기 등등을요. 연습했다고는 하지만 제 책을 쓰려고 하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옛날 일이 기억나지 않고, 책은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때, 일기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초반에 습관으로 만들어갔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 처음에는 다섯 줄 적어도 괜찮습니다. 노트에 적었는데요 한쪽을 채워야 한다, 적어도 80퍼센트 정도는 적어야 한다는 강박을 제가 줬어요. 왜냐하면 일기 쓰기를 소개한 이은대 작가는 한쪽을 적는다고 했거든요. 글쓰기 연습을 하기로 했으니 절반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니까 적어본 적이 없는 저는 뭘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또 혹시나 가족이 볼까 봐 가족에 대한 불평불만을 적지도 못 했습니다. 있었던 일 중에 가족 이야기 빼고 나면 매일이 비슷했지요. 그러니 도대체 뭘 적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한쪽 가득 채우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렸어요. 저는 글쓰기 연습이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며칠이라도 참고 썼어요. 하지만 써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일기 쓰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면 금방 그만두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섯 줄, 다섯 문장, 오 분만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습관, 어렵고 힘들고 재미없으면 오래 하지 못해요. 쉬워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부담 가지지 않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용도로 시작했다가 점차 쓰는 양과 시간을 늘리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종이에 쓰려고 하는 분이 계시다면 작고 얇은 노트를 추천합니다. 작은 곳에 적는 게 부담이 없어지면 좀 더 큰 크기를 사면 되고요, 얇은 노트 다 채우면 자신감 생기니, 이때 좀 더 두꺼운 노트를 사면 됩니다. 처음부터 다 써야지 하는 마음을 버리면 적는 게 한결 가벼워집니다.


둘, 잠과 연결하면 좋습니다. 자기 전 또는 기상 후예요. 시간을 정해도 좋아요. 잠들기 30분 전에는 일기 쓰는 시간으로요. 습관을 들일 때 행동과 연결시키면 좀 더 수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어나면 물 마시기. 물 마시면서 영양제 먹기, 아침에 화장실 갔을 때 양치하기, 손 씻고 거울 볼 때 미소 짓기. 이렇게 어떤 행동과 바로 이어서 하면 덜 잊어버리니 일관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기도 잠자기 전에 또는 일어나고 난 후에 쓰는 것으로 나와 규칙을 정하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물 마실 때 자동으로 영양제에 눈이 가고, 어떤 거울을 보더라도 미소를 짓게 되는 것처럼 취침 전후에 일기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전에 일기를 씁니다. 처음에 습관 형성할 때는 기상 후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 점검하고 바로 일기를 썼어요. 그렇게 해야만 매일 쓸 수 있겠더라고요. 초반에는 쓰는 시간을 정한 덕분에 습관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쓰면서 알게 된 이후에는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벽에 쓰지 않아도 오늘 안에는 쓸 거 아니까요. 그래도 오전은 넘기지 않으려 합니다.


셋,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씁니다. 제가 일기를 쓸 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어떻게 써야 할까를 글쓰기 방법과 연결시켰어요. 그냥 쓰는 게 더 나았습니다. 글도 써본 적 없는 사람이 방법에 맞춰서 쓰려니까 더 안 됩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들었어요. 이렇게 일기를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나열은 할 수 있으니 방법을 바꿔봤습니다. 단어로 적어도 좋고, 문장으로 끝이 안 나도 괜찮습니다. 초반이니까요. 쓰는 게 좀 더 자유로워지면, 글은 문장으로 완성하는 게 그래도 낫겠지요. 있었던 일만 적는 게 수월해지면 각 사건마다 생각과 감정을 조금씩 추가하면 됩니다. 그림일기도 좋아요. 만약 제가 사람을 졸라맨으로 그리지 않는다면, 그림을 그릴 때마다 구글 이미지에서 검색하고 있지 않는다면 전 초등학생이 쓰는 그림일기 노트로 시작했을 거 같아요. 얇고, 글도 많이 쓰지 않아도 되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하고요. 지금은 그림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모티콘으로 그려보는 게 다이어리에 담고 싶은 내용 중 하나입니다. 오늘 글을 썼다고 해서 내일 그림으로 그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나의 기록장이니, 이제는 누가 검사하지 않으니 내용도, 쓰는 방식도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쓰시길 바랍니다.




같은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은 성취부터 느낍니다. 시간을 정해서 하고요. 완벽보다 하는 일에 의미를 둡니다. 목표를 정합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빠른 성과를 바라지 않고요, 진행 상황을 기록합니다. 또, 보상 시스템을 활용해요.

다이어리 습관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목표와 환경에 좀 더 집중을 했습니다. 일기 쓰기는 작은 성취, 쓰는 시간, 행동에 더 초점을 두고 습관을 잡았습니다. 저는 초반에 이 세 가지에 신경을 썼지만 제가 선택한 방법만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 가지가 문제라 생각해서 해결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꾸준히 쓰지 않고 있는 원인부터 먼저 찾아야 합니다. 일기 3년째 쓰고 있는 사람의 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면 쉽게. 쓰는 시간이 들쭉날쭉이라면 시간을 정해서. 분량, 형식, 내용에서 완벽을 추구한다면 쓰는 일 자체에서 좋은 감정 느끼기. 쓰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목표 정하기. 일기장 펼치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일기 쓰는 공간과 도구 점검하기. 매일 쓰지 않고 있다면 달력에 쓰는 날 표시하기. 필요하다면 나에게 선물하기. 계속 적지 못하는 원인을 찾고 여기에 맞는 해결책을 강구하면 충분히 습관으로 형성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파악하지 않거나 올바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습관 형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고 어떻게 할지를 정하면 습관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만든 습관이 나중에는 일기를 쓰게 만들어 줄 겁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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