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두 형님이 있다. 형님들은 70대 중반, 난 50대 초반의 나이로 형님들에게 내가 딸뻘 된다. 난 엄마 같은 분들을 ‘형님’이라 부른다. 우린 같은 성당을 다니고 한 모임에서 만났다. 성당에서는 여자 신자들끼리 자매님이라 부르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들은 어르신 자매를 ‘형님’이라 한다.
사람은 말하는 데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판단 가능하다. 일단 A형님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그를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형님의 목소리는 성우 뺨치게 좋다. 중저음 톤의 약간 두꺼운 목소리로 교양있는 서울 말씨, 즉 표준어를 유려하게 구사한다. 형님의 말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지며 설득력이 있다. 형님은 피부도 남다르다. 탄력 있어 탱탱하고 적당히 살이 올라 주름살이 만들어질 틈이 없다. 게다가 볼그작작한 양 볼은 건강과 자신감의 표시를 더해 준다. 형님의 볼은 술이 들어가면 더욱더 발그스레 해진다.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드시고 시간이 된다면 한이 없을 것이다. 형님이 술을 잘하게 된 사연이 있다.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살았다.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어느 날 집을 나갔다. 형님은 부산에 내려가 열심히 돈을 벌었다. 세상 시름 잊기 위해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형님의 노래 실력은 가수는 저리가라 한다. 형님은 혼자서 두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웠다. 바람 난 남편은 다 늙고 병들어서 몇 년 전에 돌아왔고 곧 돌아가셨다.
“우리집 강아지가 죽었어!”
형님에겐 17년 동안 키운 강아지가 있었다. 이 강아지도 얼마 전 죽었다. 강아지가 죽었을 때 사실은 남편이 죽었을 때보다 훨씬 슬펐다고 비밀스럽게 말씀해 주셨다. 형님 곁엔 사람이 많다. 형님은 자신의 곁을 사람들에게 무한히 개방하는 것 같다. 우리 모임에서는 한 주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하는 시간이 있다. 그때 형님은 늘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를 돌보고 음식을 나눠준 이야기를 매주 하신다.
B형님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형님의 건강이 걱정됐고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다. 형님을 여러 날 겪은 지금은 걱정하지 않는다. 형님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였고 약을 복용하며 잘 극복하고 계신다. 형님은 딸 부잣집 넷째 딸이었다. 셋째 언니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며 형님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스코리아 집안답게 형님의 미모도 출중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특히 눈의 반짝임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키가 크고 몸매도 아름답다. 형님은 먹는 일을 즐기신다. 형님 가방엔 오가며 산 간식들이 언제나 한가득 들어있다. 회식을 한 번씩 하면 형님은 끝까지 젓가락을 들고 계신다. 소화력 약한 젊은이들이 과식으로 힘들어하고 있으면 형님은 뽐내며 말씀하신다.
“난 먹는 것 좋아해.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돼.”
형님은 오가며 보이는 꽃집에서 예쁜 화초들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다. 화초를 아기 키우듯 ‘금이야 옥이야’ 여기신다. B형님도 A형님처럼 ‘술’에 대해선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먹는 자리에선 무조건 술부터 시킨다. 처음엔 소맥 세 잔을 기본으로 드시고, 이후엔 소주를 쭈욱 드신다. 파킨슨병이 있어 술을 드시는게 걱정되는데, 술은 형님을 행복하게 만든다.
A형님과 B형님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언니-동생 사이이다. 정이 많은 A형님은 몸이 아픈 B형님을 가엾게 여기며 이것저것 알려주고 챙겨준다. 가끔은 따끔한 일침의 말도 서슴지 않지만, B형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며 서운해하지 않는다. 두 분은 처음 보는 사람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이 대단하시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도울 수 있을까를 본능적으로 파악하시고 약한 자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 두 분은 ‘친교’에 큰 의미를 두시며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해야 ‘정’이 든다고 강조하신다. 늘 시간이 없다며 모임 끝나고 곧장 집에 가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두 형님이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형님들 손에 이끌려 2차 주(酒)회에 참석하고 난 후엔, 언제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나는 요즘 아침-저녁 루틴을 만드느라 힘주며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루틴이 깨어지면 의지가 약했다며 자책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종의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다.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는데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난 사람을 가려서 사귀었다. 인생은 짧은데 사람 잘못 만나면 몇 년을 낭비하고 후회할 거라며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이랬던 내가 요즘은 형님들 보면서 ‘인생 뭐 별거 있어?’라며 내게 온 사람들에게 진심이면 되겠다 생각한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형님들처럼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며 오늘을 사는 것, 이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인생을 잘 사는 비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