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2015년 7월 아이가 '가족 동행 행복 찾기 1박 2일 야영 캠프' 행사에 갔다가 행사 관계자의 차에 치여 사망했다. 장례식에 온 가해자는 초췌한 얼굴로 용서를 구했고, 학교 교사들은 장례식장에서 머리를 숙이고 죄송하다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학교의 보고를 받아 경북교육청에서 작성한 사고보고서에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집에 갔다가 사고 장소로 다시 데리고 온 뒤에 사고가 난 것으로 작성해서 학교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학교의 학생도 아니고 참석 명단에도 없고 사고보고서상 학교의 책임이 전혀 없으니 다른 부서에 문의하시죠."
학교 관계자들과 목격자들도 말을 바꿨다.
"오라고 하지도 않은 유치원생을 아버지가 데려왔다가 돌보지 않아서 사고가 났어요."
사고 장소까지 보리를 태우고 간 건 교사였고, 그는 사고 당일 보리의 참가를 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내용을 진술했고 교장은 서명했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아이를 보낸 긴 상실에서 회복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삶을 살아내는 것,
이 일의 진위여부가 밝혀져 학교에 제대로 된 안전 대책이 세워지도록 하는 것.
이 이야기는 보리를 잃은 아버지가 7년 반 동안 기록한 긴 애도의 여정이다.
'나에게는 글쓰기 밖에 없었다.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는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누구보다 이 문장을 공감하고 있다.
나 역시 지금 글쓰기를 통해서 이 슬픈 구간을 지나가고 있으니까.
나는 콘텐츠 기획자라 늘 결과에 책임지는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글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늘 무거운 짐을 한쪽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테오를 잃으면서 나의 글쓰기의 유일한 수신자는 테오가 되었다. 늘 글을 쓸 때 '단 한 사람에게 닿는 것처럼' 글을 쓰라고 내 수업에서도 가르쳤고,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 왔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나의 수신자가 되었을 때 글쓰기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겁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치유받는 사람이 되었다.
혹시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긴 슬픔의 구간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 대상을 향해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시길 권하고 싶다. 글을 쓰는 건 그 대상을 기억하고 말을 걸고있는 거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건강하게 마음을 달랠 수 있다.나는 글을 쓰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보리 아버님의 글을 읽으며 내 상실에 대한 작은 위로를 받았다.
보리 아버지는 글을 쓰며 자신과 화해하고, 보리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그리고 성장해가고 있다.
아버지에겐 숙제가 있었다.
부족한 대로, 잘못한 대로,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현실에서 할 일을 하는 것.
아버지의 할일은 남은 가족들과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대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잘못 기록된 사고 경위를 바로잡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세워지도록 승소해내는 것,
그리고 보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리 아버지는 '누군가를 잘 보내준다는 건 그를 다시 살린다는 것,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이, 큰 상실을 겪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등에 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분들께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y00p-vxvQ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