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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Jul 20. 2023

매일의 너를 기록해 둘걸

chapter1. 이별을 준비하던 여섯 번의 밤

2023. 06. 14


테오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며 매일의 테오를 기록하기로 했다.

사진들을 하나씩 들춰보았다.


2018년 7월 21일. 테오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2018년 7월 21일은 테오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이다.

친척 언니가 키우던 4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였던 테오는 우리 집으로 와 외동냥이가 되었다.

데리고 온 날 너무 많이 울어서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올까 봐 새벽까지 마음을 졸였다.

많이 울었지만 테오는 엄청난 애교쟁이였다.

팔을 주욱 뻗어 누워있는 내 몸 위로 슬라이딩하며 포갰다.

아직 내가 낯설 텐데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라니.. 그런데 테오야, 울든지 애교 부리든지 하나만 하지 너무 언행불일치 아니니.


테오는 그렇게 밤새 울며 애교를 부리며 나에게 사랑스러움을 어필했다. 다음 날 교회에 다녀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테오가 또 나한테 엉겨 붙겠지 생각하면 귀여운데 조금 부담스러웠다.

친척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테오가 밤새 울어서 나는 한잠도 못 잤어.

민원이 들어올 것 같은데 내가 저 아이를 계속 키울 수 있을까?"


고양이 울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며 언니가 안심하라고 했다.

다행히 테오는 다음날부터 우리 집에 완벽 적응했고 원래부터 외동냥이였던 것처럼 편안하게 우리 집의 풍경이 되어 갔다. 첫날밤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테오를 보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없다.


언니와 형부는 테오를 우리 집에 보내주고 돌아가며 얘기했다고 한다.

"옹구(테오의 원래 이름 중 하나)가 새벽마다 잠을 못 자게 머리 때리며 깨우니 아마 키우기 힘들 거야. 못 키우겠다고 하면 우리가 일주일 즈음 있다가 다시 데리고 오자."


새벽마다 머리 때리며 온 집안사람들을 다 깨우고 다니던 옹구는 나의 새벽에도 성실하게 머리를 때리며 잠을 깨웠다. 이후 테오를 키우는 5년 동안 나는 새벽에 깨지 않고 잠을 푹 잔 적은 없다. 하지만 테오의 새벽잠 방해 빼고는 모든 면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테오를 데리고 와도 되는지 고민했던 일주일마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하루라도 더 빨리 데리고 올걸...


그렇게 옹구이자 나옹이었던 하얀색 터키쉬 앙고라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나의 테오'가 되었다.



 

6월 13일의 테오. 자꾸 웅크리길래 인디언텐트에서 편히 자라고 안아서 넣어줬다. 몸이 너무 가벼워져 안을 때마다 놀란다.


6월 14일. 오늘의 테오.


테오는 피가 섞인 오줌을 계속 흘리며 웅크리고 앉아있다. 습식 사료를 조금 줬는데 여전히 입맛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테오 옆에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테오야, 우리가 있어.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힘내. 누나 괜찮으니까 힘들면 편히 눈 감아도 돼. 잘했어, 내 아기."

옆에 우리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계속 말해줬다.




형님이 걱정된 에디도 계속 테오를 지켜보고 있다. 오히려 에디가 밥을 남기고 있다. 집안의 공기가 변했음을 알고 있는 듯이.


아마도 곧 테오와 이별할 듯하다. 그동안 써놓은 블로그 육아일기를 보는데 그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휘발되는 인스타 스토리 말고 블로그에 더 자주 기록해 둘걸. 들여다볼 수 있는 건 기록뿐인데..


2023년 6월 14일 오전.

열여덟 살 나의 소중한 테오는 마지막 힘을 내고 있다.

곁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하다.




_


그리고 7월 20일.

테오가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테오를 5년 동안 키웠는데 매일매일 테오와의 사소한 일상들을 기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테오가 떠난 후에도 매일 읽으며 테오를 그리워할 수 있었을 텐데.

바보같이 나는 테오가 마지막을 준비할 즈음에야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테오와의 작은 일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기록에 집착했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글쓰기가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이즈음의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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